[글로벌 뷰포인트] '유럽위기' 아시아보다 심각..앨빈토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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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사 - LA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아시아가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그러나 아시아보다 유럽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아시아는 일시적인 충격을 받고 있지만 유럽은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럽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까, 유럽통합은 과연 옳은 방향인가,그렇지 않다면 어떤 해결방법이 있을까. "유럽은 왜 아시아보다도 상황이 악화될 것인가"라는 앨빈 토플러의 기고를 옮긴다. ======================================================================= 세계가 아시아 금융위기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 더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유럽의 은행들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화폐가치도 폭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화폐.정치 통합노력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왜 실직한 젊은 이민자들이 스트라스부르그의 거리와 파리교외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왜 스페인 광부들은 아스투리안석탄지대에서 바리케이트를 쌓아놓고 있을까, 왜 유럽의 실업률은 미국의 두배에 달하고,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는다는 일본의 실업률보다도 훨씬 높은가. 정답은 이렇다. 아시아의 위기는 단기적이고 피상적이지만 유럽의 위기는 오래되고 구조적인 탓이다. 아시아가 미래를 향해 나가는 길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다면 유럽은 과거에 안주하기위해 투쟁하고 있다. 아시아의 화폐가치는 하루아침에 폭락했다. 그러나 공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시아인들의 기술과 직업윤리가 당장 없어진 것도 아니다. 금융위기는 제아무리 엄청난 것이라도 단기간에 고쳐질 수 있다. 적어도 이론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구조적인 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유럽의 고통은 단하루도 생산라인에서 일해보지 않은 경제학자나 평론가들의 주장처럼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과 게으름때문이 아니다. 복지시스템때문도 아니다. 정계나 재계의 지도자들이 항상 그릇된 전략을 추구했던게 주요 원인이다. 유럽통합과 관련한 노력은 지난 50년대초부터 시작됐다. 장 모네 로버트 슈만같은 지도자들이 "독일이 경제적인 통일을 이룰 경우 예상되는 미래의 전쟁"을 방지한다는 취지에서였다. 당시 그들은 2차세계대전으로 붕괴된 "제2의 물결(혹은 산업적인)경제"를 재건하려고 지난한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은 50년대 초까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된 경제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지식"을 토대로한 훨씬 발전된 "제3의 물결경제"는 그로부터 반세기안에 지구촌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가장 발달된 컴퓨터기술을 제조업에 적용한 일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강해졌고 주변 아시아경제의 성장을 자극했다. 황량한 항구도시였던 싱가포르는 30년만에 세계 정보통신기술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고무와 주석수출국인 말레이시아도 15년만에 세계의 핵심 반도체칩생산국이되었다. 중국 역시 최근들어 아주 열정적으로 컴퓨터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유럽지도자들은 그러나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왔다. 그들은 수십년동안 가장 낙후된 "제1의 물결경제(농업)"분야에 많은 정부보조금을 지출했다. 아직도 EU전체예산의 절반정도인 연간 4백50억달러정도가 담배농가 양봉업자 올리브농가 등에 지원되고 있다. 반면 제3의물결인 과학기술에는 아주 적은 지원만 하고 있다. EU국가들은 첨단기술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SAP를 제외하면 유럽은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견줄만한 소프트웨어회사가 없다. 인텔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칩메이커도 없다. IBM 후지쯔 컴팩 델 등과 경쟁할만한 컴퓨터회사가 없음은 물론이다. 유럽은 어느정도 발전된 생명공학회사는 갖고 있다. 복제양 돌리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회사다. 또 네덜란드 로얄-네드-리요드나 EU멤버는 아니지만 스웨덴의 빌스페디션같은 세계적인 물류회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회사들도 개인 벤처자본이 새로운 제3의 물결분야로 쏟아지는 미국보다는 훨씬 뒤떨어져 있다. 유럽이 정체돼있는 동안 아시아는 값싼 노동력을 토대로 제2의 물결을 주도해 왔다. 물론 이는 훨씬 발전된 제3의 물결경제로 옮겨가기위한 일시적인 전략적 발걸음이었다. 유럽통합주의자들은 3억5천만명이라는 잠재적인 시장에 주목한다. 이 정도 인구라면 유럽을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산업시대에서 엄청난 장점이었던 "규모"는 그러나 제3의 물결시대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산과 소비가 주문에 맞춰 이뤄지고 틈새시장을 이용한 전략을 활용해야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회사들은 관료주의적인 계급주의를 타파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고 지금도 또다른 관료주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고용과 해고를 쉽게 만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하고 경직된 노동운동이 사라지는 지금도 유럽통합주의자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유동성이 가장 중요한 화폐시장에서조차 유동성을 축소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왜곡되고 적응하기 어려운 세계 시장에 대처하기위해 화폐의 유연성을 더욱 높이려고 하는데 유독 유럽통합주의자들만 단일통화에 집착하고 있다. 이는 경제발전단계와 환율 문화가 서로 다른 국가들과의 교류를 급격히 감소시킬 가능성이 크다. 제3의 물결 경제는 더욱 강화된 분권화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소규모 지역과 지방으로의 권력분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EU의 전략가들은 아직도 제2의 물결 시대의 중앙집중화를 강조하고 있다. 제3의 물결 경제는 생산방식과 욕구가 모두 다양하다. 그러나 브뤼셀의 EU관리들은 "조화"라는 명분속에서 지방의 다양성을 말살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교육에서부터 치즈와 맥주까지 모든 것을 표준화하는게 좋다는 이유에서다. 결론적으로 미국 일본 아시아는 새로운 제3의 물결 경제의 전략적 장점을 취하고 있는 반면 유럽의 지도자들은 흘러간 전략에 매달려있다. 이같은 실패가 확실한 전략을 고집할 경우 유럽은 실업문제와 취약한 경쟁력을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같은 건전한 비판여론을 형성하기위해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초민족주의자인종주의자 파시스트 등과 협력할 수는 없다. 뒤떨어진 유럽지도자들보다도 훨씬 수준낮은 노동조합과 연대하자는 것도 아니다. 유럽통합주의자들과 싸우는 길은 분명 미래지향적이고 분권화된 유럽대륙의제3의 물결전략과 연대하는 길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