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실업자 방치는 곤란
입력
수정
"단골고객 20%가 매출액의 80%를 차지한다" 마케팅이론에 나오는 "20대 80의 법칙"이다. 단골고객을 집중 공략하는게 마케팅성공의 비결이라는 얘기다. 파레토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원리는 "상술"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세계화로 요약되는 세계체제에 대한 설명에도 이용된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세계화의 덫"이란 책을 쓴 저자들도 세계화는 20%의 승자와 80%의 패자로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 뿐이라고 경고한다. 미국 모건스탠리딘위터사가 최근 국내 6개은행을 대상으로 작성한 투자분석보고서의 결론도 "강한자는 더욱 강해지고 약한 곳은 더욱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은행만이 아니라 현재 모든 산업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도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IMF 체제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되는 멕시코의 빈부격차가 IMF지원 이전보다 더 심화됐다는 사실은 이에대한 반증이다. 소수의 승자에 밀린 다수의 패자들은 일터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하루 1만명의 실업자가 대책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제일은행 직원 부인이 "남편 기살리기" 행사에서 읽은 편지내용처럼 "하루세끼 밥먹고 사는 일상사가 이처럼 가슴저미는 고마움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세계화된 경쟁이 경제발전에 더욱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미 증명이 됐다. 그러나 경쟁은 뒷골목을 방황하는 다수의 패배자를 낳을수 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패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실업자대책은 이런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1등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도박판에도 패자에게는 "개평"이라는 너그러움을 남겨 둔다.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사회는 더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이때 파레토법칙은 효율적 경영기법이 아니라 만인대 만인의 투쟁인 "늑대의 법칙"에 불과할 뿐이다. 안상욱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