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익과 혁신을 위한 구조조정 .. 김인호 <한양대>

김인호 IMF사태를 보면서 새삼 세계 금융시장에서 앵글로 아메리칸의 위력을 실감케 된다. 어떤 나라든 조금만 틈을 보이면 곧 그들의 사냥감이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는 강자가 배고플때만 강자의 먹이가 되지만 세계 금융시장에서 약자는 누구든 언제나 강자인 앵글로 아메리칸의 먹이가 된다. 작금의 IMF사태는 어리석게도 허술하고 허약한 한국의 종금사들이 그들의 본토에서 돈을 벌어 보겠다고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허세와 버블로 부풀어있는 한국산업을 몽땅 그들의 먹잇감이 되게한 형상과 같다. 그러나 금융산업은 결코 우리가 먹고 살 우리의 산업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산업으로 그 많은 빚을 갚아가면서 먹고 살아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끝내 제조업이 우리의 주력일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재벌체제로 제조산업에 주력하여 세계의 생산기지가 되긴 했다. 그러나 우리가 키워온 철강.조선.자동차.전자산업에서도 기업들은 핵심역량의 보강책보다는 차입경영의 틀속에서 재벌기업간의 과욕과 중복투자로 엄청난 공급능력과잉을 초래했다. 그래서 이제 그 생산기지의 상당부분을 앵글로 아메리칸을 위시한 강자들에게 먹이로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산업을 발전시키는 진정한 원동력은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일찍이 슘페터는 1934년에 기술혁신만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임을 인식하고 혁신의 주체인 기업가의 역할을 역설한바 있다. 그러나 당시는 대량공급에 비해 수요의 절대부족으로 야기된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을 인위적인 유효수요의 창출로 치유코자 한 케인스의 치유책이 워낙 호소력있게 어필하던 때였다. 그의 혁신이론은 빛을 보지 못한채 묻혀버렸다. 약 반세기가 지난 80년대에 들어 정보통신 혁명기를 거치면서 기술혁신이야말로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의 핵심 요체임을 재인식하게 됐다. 산업정책의 유해론이나 무용론을 주장하던 선진국에서도 혁신을 조장하며 혁신력을 강화 극대화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국익추구의 절대수단으로전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선진국에서의 산업정책은 철저하게 국익 제일주의와 혁신 제일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IMF체제하에서 중복투자에 대한 처방책으로 산업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특히 기술변화가 심한 산업에 대한 산업구조조정이 대단히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면 산업구조조정은 어떤 정책적 판단을 기초로 해야 할 것인가. 단순한 재벌기업간의 사업 맞교환이 산업구조조정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미 많은 토론을 거쳐 확인된바 있다. 국익을 도모하며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산업경쟁력은 혁신력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혁신의 속성, 곧 혁신활동은 그간의 혁신 경로와 현재의 혁신역량에좌우되며 산업에 따라서, 기업에 따라서, 기술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기업과 기업가들이 더욱더 혁신적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간 이동통신산업에서 빚어진 001, 012, 015, 016, 017, 018, 019 등의 경쟁도입과 국제전화 시외전화 시내전화에서의 경쟁도입이 과연 혁신을 조장하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나마의 혁신기반마저도 마구 흔들어놓은 것은 아니었는지를 냉정히 평가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혁신력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과감한 구조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우에도 우선 국익의 견지에서는 현재 안고있는 국가적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앵글로 아메리칸의 속성을 이해하고 미국메이커들의 능력(자금.기술.마케팅판매력)을 최대한 빌릴수 있어야 한다. 혁신의 견지에서는 국내 자동차메이커들과 부품사들의 혁신활동이 더욱 촉진될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때 독자자립형의 현대와 강한 엔진, 전자식 신통제변속시스템을 장착한 포드의 차세대 글로벌카(CDW27)의 조기수용및 보다 진보된 CFM등의 신공정기술 습득을 위한 포드의 파트너, 그리고 GM의 기존파트너에 의한 3사체제가 보다 현실적인 산업구조조정의 구도가 아닌가 판단된다. 이와같이 국익 제일주의와 혁신 제일주의의 정책적 기초가 정보통신산업및자동차산업과 철강.조선.석유산업 등의 실물경제에서는 물론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시에도 철저하게 준거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