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6일자) 비전있는 대기업정책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한달동안 외채연장성공 환율하락 금리인하추진 등 경제해법은 정치쪽의 여야갈등과 비교할때 상대적으로 무난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외채위기 극복을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며 정부가 앞으로 금융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정부는 은행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은행과 기업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체결, 대기업 계열사간의 상호지급보증해소, 부채비율 조기축소 등 일련의 대기업정책을 내놓았다. 그만큼 대기업 구조조정이 당면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또 현재 지나치게 높은 부채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데에도 전혀 이견이없다. 다만 산업정책차원의 비전제시 및 정책의 일관성유지라는 두가지 점에서 볼때 문제가 없지 않다고 본다. 우선 IMF규제를 벗어난뒤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게 될 위치와 역할에 대한 뚜렷한 방향제시도 없이 무작정 빨리 구조조정을 하라고 몰아세우는 감이 있다. 대기업의 의사결정이 수많은 거래기업들, 나아가 경제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는 현실을 생각할때 주력기업 3~4개만 남기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모두 정리하라는 마구잡이식 구조조정은 자칫 큰 후유증을 남길 염려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외자유입 촉진이외에 경쟁을 통한 효율향상을 위해서도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을 막을 이유가 없지만 국내기업의 손발을 묶는 비합리적인 규제는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처럼 국내기업에 우선권을 주는 차별대우를 하지않고 시장자율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원칙은 좋지만 현실은 오히려 국내기업이 불이익을 강요당하는 역차별이 심각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 우량은행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급증한데 비해 국내 대기업들은 여전히 4% 상한선에 묶여 있다. 지난 24일 현재 외국인 투자자의 은행 소유지분을 보면 국민은행이 작년 12월말보다 무려 17.5%포인트가 늘어난 43.0%, 주택은행이 8.6%포인트 증가한 45.5%, 신한은행 26.1%, 하나은행 23.3%, 보람은행 11.7%를 각각 나타내고 있다. 현재로서는 낮은 주가와 높은 환율에 힘입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보이지만 만일 본격적으로 이들 은행들을 인수.합병(M&A)할 경우 대기업 구조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구조조정을 서두르라면서 대량해고는 안된다든지, 이미 체결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무시한채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 부채비율을 2백%이내로 낮추라는 등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논리와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구조조정을 하자면 계열사 또는 보유자산을 매각하거나 고용인원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환율불안이 지속되고 부동산경기가 바닥인데다 자산담보부 채권(ABS)발행 등의 제도장치도 없는 현실에선 기업들의 운신의 폭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