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0일자) 상법개정과 기업투명성

정부가 제시한 상법개정안은 기업경영과 관련해 달라지는 내용이 꽤 많은 편이다. 소수주주권의 행사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동시에 주주제안권과 누적투표제 신설 등 소액주주들의 경영감시활동을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이 확충됐다. 동시에 기업분할의 무제한 허용, 합병절차 간소화, 주식액면 기준금액의 하향조정 등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내용들이 함께 담겨져 있다.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경영책임 강화, 그리고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오는 1일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갖는 등 폭넓은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상반기중 국회에서 통과되면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IMF관리체제하에 있는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들의 대외신인도 회복과 외국인직접투자 유치 등이 절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법개정의 취지와 방향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우리 기업의 회계장부를 믿지못하겠다는 외국투자가들의 불신이 계속되는 한 외환위기 극복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상법의 특례조치라 할 수 있는 상장회사에 대한 소수주주권 행사요건등은 이미 지난 2월 증권거래법개정을 통해 대폭 완화된바 있어 법개정의 순서가 뒤바뀌고 오히려 뒤늦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점에서 상법 개정은 빠를수록 좋다. 다만 워낙 이해당사자가 많고 기업경영의 관행에 많은 변화를 수반할 것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의견 수렴을 통해 최종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제도가 완벽하다고 해서 그 결과가 모두 좋을 수는 없다. 제도보다 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금년부터 처음으로 도입된 사외이사제도만 해도 그렇다. 주총을 끝낸 12월말결산 상장법인들의 경우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는 했으나 경영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보다 사회 덕망가나 유명인사들이 대부분이어서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따라서 상법개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가는 지배주주들이 법에 규정된 각종 제도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여러가지 제도적 지원장치를 마련하더라도 활용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배주주의 견제기능이 강화됐다고 해서 제도를 악용하거나 남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상법이 개정되면 소액투자자들이 회사와 경영진을 상대로 주총소집이나 임원해임 등 여러가지 소송을 예전보다 쉽게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같은 권한이 남용될 경우 경영혁신은 물론 기업성장에 오히려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소수주주권 행사에도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