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IMF와 미술품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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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국내 미술계는 깜짝 놀랐다. 미국 뉴욕의 소더비에서 실시된 한국미술품 첫 단독경매에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가 1백76만달러(14억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94년 4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선 15세기 "조선청화백자 보상당초문접시"가3백8만달러(24억원)에 판매됐다. 96년 11월 크리스티에서는 "조선백자 철화용문항아리"가 7백65만달러(63억5천만원)에 낙찰됐다. 이 백자의 예정가는 40만~60만달러였다. 며칠 뒤 독일 슈투트가르트 프리츠 나겔에서 이뤄진 동양미술품 경매에서도"조선백자 철사항아리"가 예정가 7천마르크의 60배이상인 44만마르크(2억4천만원)에 임자를 찾았다. 이날 출품된 35점 모두 예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한국고미술품이 이처럼 인기를 끌자 97년 2월엔 프랑스 파리 드루오경매장에서 유럽 최초의 한국미술품 단독경매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장경주의 초상화는 예정가의 20배 가까운 16만프랑(2천5백만원)에 낙찰됐다. 1년전만 해도 국제경매시장에서 이처럼 사랑받던 한국고미술품이 올들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최근 국제시장의 조선시대 도자기값이 1만달러이하로떨어지자 매년 3~4월에 열던 한국미술품 경매를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소더비는 가을경매는 마련한다는 계획이나 크리스티는 그것도 불확실한 상태다. 90년대 들어 고미술품의 국제경매가가 치솟자 국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경매가 급등은 대부분 한국수장가들의 과당경쟁 때문이며 따라서 외화를 낭비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한국미술품의 값이 오르면 세계 각지의 좋은 물건이 출품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 문화재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IMF사태 이후 세계시장에서 한국미술품의 값이 가장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그동안의 시세가 국내수집가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한 거품이었다는 일부의 비판을 수긍케 한다. 우리 사회에는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자존심 싸움이 너무 많다.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기는 가장 어리석은 정책"이라는 말은 개인과 기업 모두에 해당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