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미국 철강업계의 '경쟁력'

"미국 철강회사들이 자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최대 비결은무엇일까?" "외국산 제품에 대해 걸핏하면 걸고 넘어지는 반덤핑 시비"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월스트리트저널까지도 최근 미국철강업계의 지나친 남소를 지적했다. "지고도 이기는 철강업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철강업계들은 모호한덤핑 기준 등 미국 무역관련 법규의 허점을 파고들어 반덤핑 제소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 무역위원회(TTC)에 따르면 철강업계가 수입 제품에 대해 제기한 반덤핑 제소는 무려 24건으로 총 소송건수의 83%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연간 수입액 가운데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안된다. 미국 철강업계가 마구잡이식 반덤핑 제소를 남발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비 판정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수입제품의 범람으로 인해 미국 업꼐가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엔 제제할 수 있게 돼있다. 일단 예비 판정에서 덤핑 등 불공정 혐의가 인정되면 외국 업계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반덤핑 관세를 예치해야 한다. 당장 경제적인 부담이 커진다. 대미 수출의욕이 위축될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 법의 틈새를 미국 철강업계가 유독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은 워싱턴에광범위하고 치밀한 로비망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에스스틸, 베들레헴, AK스탤, 인랜드스틸 등 미국의 대형 철강업계들은 로비 컨소시엄을 구성해 워싱턴에 2개의 반덤핑 제소 전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산 철강의 수입이 늘어나는 조짐만 보이면 이들 법률 조직을 즉각 가동해 "제소"부터 하고 본다는 것이다. 물론 제소를 남발하다보니 승소율은 절반에도 못미친다. 지난 10년간의 승소율은 46%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단 제소당한 외국업체는 최종결과에 관계없이 큰 타격을 입는다. 지난해 미국 업계로부터 제소당했던 독일 철강업계 티센사가 최종적으로 덤핑 혐의를 벗기는 했으나 대미 수출이 일거에 40%나 줄어들고만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한국도 차제에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법률의 헛점과 남소의 문제점이 미국언론 스스로에 의해 고발된 만큼 제도와 관행시정을 요구할 때다. 이학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