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그룹 진입 "반갑지 않다"

30대 그룹 진입이나 탈락을 둘러싼 재계의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0대그룹 진입은 그룹 성장을 증명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졌다. 임직원들도 비로소 대기업에 근무하는 느낌이 든다며 우쭐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30대 그룹에 처음 들어간 모그룹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30대그룹으로까지 성장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며 창업과정을 무용담처럼 설명하기도 했었다. 올해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30대그룹에 새로 진입한 강원산업과 새한은 상호출자 및 신규채무보증을 할 수 없다. 오는 2001년까지 기존 채무보증을 전액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 여기에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30대 재벌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보는 국민의 시선도 따갑다. 결국 "부채덩어리""선단식 경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풍기게 돼 이득은 하나도 없이 부담과 책임만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다. 30대기업집단 제도가 처음 생긴 지난 93년 30대그룹에 들었다가 5년만에 다시 진입한 강원산업측은 "강원산업은 철강전문 그룹인 만큼 다른 그룹들과 동일시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삼성그룹에서 분가해 그룹으로 공식 출범한 새한 관계자도 "사업을 좀 더 활발하게 하기 전에 너무 일찍 30대 그룹에 진입해 이런 저런 규제를 받게 돼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반면 처음으로 30대그룹에서 탈락한 한일 측은 "상호지보 해소대상에서 풀리게 돼 홀가분하다"며 "30대 그룹에 들었다고 해서 좋은 기업으로 여기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강조했다. 30대그룹 퇴출에 대한 재계의 달라진 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30위로 30대그룹에 턱걸이한 신호는 다른 기업의 부도와 덩치줄이기로 오히려 25위까지 올라 30대그룹 탈락의 "꿈"을 이루지 못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30대 그룹에 대한 인식 변화는 상위그룹 경우도 다르지 않다. 대우에 3위 자리를 내준 LG는 "질보다 양"을 강조하면서 "순익 위주의 경영을 해야 할 시대에 그룹의 자산만을 기준으로 한 등수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1위자리를 유지한 현대 관계자도 "이제 30대 기업집단 제도는 정부 규제를 위한 틀일 뿐이지 기업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으로 볼 수 없다"며 "기업들은 이같은 순위에 연연해하지 말고 내실경영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그룹체제를 사실상 해체할 것을 주문하면서 30대기업을 지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규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난을 벗어나려면 지정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