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IMF 극복 전략과 비전 .. 이각범 <전 정책수석>

이각범 이른바 "IMF 상황"이라고 하는 오늘의 외환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우리 사회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유동성 위기가 결합되었던데 있다. 이중에서도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것은 구조적 측면이며, 주변적이고 우연적인 것은 유동성 부족현상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작년의 외환 금융위기 발생이후 두정권에 걸쳐서 정부는 유동성 위기의 해소에 총력을 기울였고, 우선 급한 불은 끈 셈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의 극복은 우리경제의 누적된 구조적 결함을 시정해야만달성할 수 있다. 90년대 들어 세계는 급속히 하나의 실체로서 그야말로 세계화되어가고 있었고 우리경제, 나아가 사회전체가 안고 있는 고비용.저효율구조는 "세계화 정보화"개혁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한 개선되기 어려웠다. 우리사회의 이해집단이 만들어내는 역학구조와 바로 이를 대변하는 정치권이 그러했고,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와 이것을 반영하는 여론이 그러했다. 6.25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이번 쇼크가 외부로부터 오지 않았더라면 누적된 우리 내부의 모순을 시정하고, 우리 사회 경제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를 갖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기업이 연쇄부도사태에 몰리고, 실업자가 1백만명을 훨씬 웃도는 작금의 인고의 세월에 대해 외지에서 "전화위복(blessing in disguise)"이 될 것이라고 논평하는 것도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이번의 위기야말로 한국이 재도약할 수 있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이 어려운 시기가 역사적 관점에서 축복의 시기로 기술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IMF 사태"극복의 방식을 우리의 21세기 발전전략과 일관성있는 논리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경제적 업적이라고 내건 것은 대부분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단기적 성과와 연관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아직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21세기 비전이다. 21세기 비전이란 현재 전지구적으로 변화하는 커다란 흐름을 염두에 둔 우리의 국가발전전략이다. 그것은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로의 변동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 경제의 구조적 대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극복의 정책은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두어 이 전략의 큰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시장과 싸우지 말아야 하며,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되는 우리나라 기업의 방만한 차입경영체제가 오랜 기간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도사태와 대량실업사태도 따지고 보면 퇴출되었어야할 기업들이 머물러 있고, 노동시장 구조조정이 미루어졌기 때문에 건실한 기업의 도산과 무고한 사람의 실업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고비용 저생산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기업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을 하면서도 오랫동안 외형성장에치우쳤던 것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 등으로 생긴 거품이 영업수지적자를 메워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금융기관에 대규모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이는 또 다시 기업의 연쇄도산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무리한 인위적 부동산 경기부양은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사회의 고비용을 만드는데 앞장서왔던 지대추구층(rent-seeking class)의 지위를 보존할 수 있는 부동산정책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생산성 향상과 관련해서도 민간부문은 가능한한 자율적으로 맡겨놓되 정부부문의 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해야할 것이다. 기획예산위원회가 의욕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기업가형 정부"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기 바란다. 셋째로 정부의 토지.도시정책의 변화에는 우려할만한 부분이 많다. "경제살리기"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권의 로비가 심하였지만 공공의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억제되던 지대추구층의 이해가 "IMF사태"를 빙자하여 실현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 약간의 효과를 본다고 해서 앞으로 큰비용을 초래하게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후환을 남기는 일이 된다. 많은 이들의 고통을 요구하는 오늘의 "IMF시대"를 진실로 국가의 장기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개혁의 전기로 만들기 위해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요구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