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그레샴사회와 다윈형사회..이봉구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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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형편이 말이 아니다.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종합주가지수 400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시장은 기력을 완전히 잃고 외국인들의 동향에 따라 등락이 좌우되는 한심한 꼴이다. 객장은 자포자기 상태인 투자자들의 한숨으로 가득차 있다. 증시는 경제의 거울이다. 경제가 좋으면 주가가 올라가고 나쁠때는 하락하기 마련이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나라경제가 IMF관리체제로까지 떨어진 상황이니 주가가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좀더 찬찬히 뜯어보면 증시침체를 초래한 것이 꼭 외환위기 때문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오늘의 혼란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가정등 나라의 모든 부문이 서로 뒤얽혀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꼭 들어맞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빚어낸 결과다. 주가하락의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부문부터 보자. 기업들은 과다한 차입금이 상징하듯 방만한 경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은행등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 과잉투자나 부동산 구입 등을 서슴지 않았던 결과다. 남의 돈으로 부자행세를 하며 해외투자에 열을 올린 것도 불과 얼마전까지의모습이었다. 은행 돈을 쓰지 않는 경영자는 바보취급조차 당했기 때문에 너도나도 차입금을 늘렸다. 은행 역시 방만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넙죽넙죽 뒷돈을 댔다. 때로는 무책임한 정치권이나 관청의 입김이 작용했고 때로는 커미션이 따라붙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차입금은 기업의 지불능력을 넘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기업이망하면 은행도 망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됐다. 부실기업이 은행쪽에 부도를 내려면 내봐라고 오히려 큰소리 치는 모습까지나오게 됐다. 뒷배경이 없거나 정직한 금융거래를 고집하는 기업인들은 자연히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도태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레샴형 사회로서의 특징은 정계든 교육계든 사회전반이 마찬가지다. 정계에서는 자기의 주장을 펴기보다는 어떤 보스를 얼마나 충실히 모시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결정돼 왔다. 교육계 역시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고액과외가 설쳐대니 학교교육이 제자리를 잃었다. 비리를 폭로하거나 윤리와 도덕을 외치는 사람은 궁지에 몰리고 심하면 뒷조사까지 당해야 하는 세상이다. 더구나 사회 각 부문은 난마처럼 얽혀 상호작용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번창하기를 바라는 것은 썩은 나무에서 꽃이 피기를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대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철저히 적자생존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다. 강한 자는 성하고 약한 자는 망하는 다윈의 법칙이 살아있는 사회다. M&A(기업인수합병)가 활발히 일어나고 계약제나 연봉제 같은 제도가 뿌리를내리고 있는 것들이 이를 상징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오늘의 강한 미국을 이끌어 가고 있다. 반면 정부가 경제에 깊이 개입하고 경쟁을 제한해 온 일본은 욱일승천의 기세가 꺾이면서 경제가 바닥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세계경제 흐름에서 미국이 승승장구하고 한국과 일본이 내리막길로 들어선것은 다윈형 사회시스템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다. 과제는 분명하다. 하루빨리 구태를 털어내고 다윈형 사회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기업구조조정은 가능한한 신속히 해치워야하고 국민들의 인식과 생활태도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 체제전환을 얼마나 신속히 이룩하느냐 여부가 한국경제회생의 속도도 좌우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