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시녀와 남대문 출장소

"(14+11)/2=13" 지난 25일 확정된 한국은행 조직개편의 방정식이다. 한은 집행부는 당초 16개인 본점부서를 14개로 줄이는걸 골자로한 조직개편안을 만들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펄쩍 뛰었다. 구조조정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때 한참 멀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후 금통위가 내놓은 안이 본점조직을 11개로 축소한다는 것. 이번엔 집행부가 흥분했다. 금통위가 "대외적 시각"만을 의식, 꼭 필요한 부서마저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금통위는 "13개부서로의 축소"라는 타협안을 통과시켰다. 금통위는 물론 집행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라는게 한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여야가 힘겨루기끝에 기획예산위회와 예산청이라는 "기형아"를탄생시킨 것과 다를게 없다. 더욱이 핵심인 지방점포폐쇄는 빠져버렸다. 전철환 한은총재는 목포 포항 강릉 울산지점을 없애려 했다가 정치권 반발이 거세지자 슬그머니 철회했다. 금통위조차 입을 다물었다. 매를 대신 맞아준 전 총재에게 감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10여년전 금통위원을 지낸 한 대학교수는 금통위를 "시녀와 식객"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시녀요, 한은의 손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독립된 한국은행의 최고기구인 금통위는 조직개편파동을 계기로 식객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부의 시녀라는 인식까지 불식시키진 못했다. 한은 집행부도 "재경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오명을 벗어던질 채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걸 확인시켰음은 물론이다. 하영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