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과시문화 .. 손장순 <소설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은 경험은 누구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기억나지 않는 타인으로부터 왔기에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끝내 주인을 알 수 없다. 시간과 정력 소모가 아까워 포기하고 마는데 대개는 오리무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관계에게서 오는 청첩장이다. 영화를 통해 보더라도 외국의 경조사는 아주 가까운 친지들만 불러놓고 진심으로 축하와 조의를 주고 받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결혼식인 경우 즉석에서 댄스파티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 체면을 존중해서 살아온 한국의 문화는 그런 행사때 잘 알건 모르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북적거리는 관습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기억이 안나서 고민할 정도의 사람들에게도 청첩장을 마구 뿌리고 결혼식장에서는 신랑신부가 입장도 하기 전에 이미 옆방의 식탁에 앉아서 먹는 일이 허다하다. 어느 식장의 종업원들은 아예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몇차례 손님을 치러야 하니 빨리 먹고 가달라고 한다. 결혼축의금을 내러가서 인간 대접도 제대로 못받은 것 같아 불쾌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친구는 서서 혹은 아무데나 앉아서 급히 먹다보면 수용소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같아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 누구도 이런 경조사의 관습을 고치고자 하지 않는다. 마치 품앗이를 하듯 주고 받고, 가주고 와주는 일이 되풀이 된다. 많은 손님이 와야만 잔치를 한 것 같고 체면이 서는 과시문화 탓이다. 이 과시성은 경조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어서 새로 입주할 아파트의 주방과 욕실 시설을 마음에 드는 외제로 바꾸기 위해 뜯어내는 것이 한때 유행이었는데 이것은 자원낭비요, 쌓이는 쓰레기로 인해 환경공해를 유발할 뿐이다. 결혼식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공해와 더불어서다. 자본주의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산업의 발달로 물건이 너무 많이 쌓이고 남아 돌아가 집집마다 처치곤란한 것도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같다. 옷들이 너무 많아 이제 드레스룸 없이는 견디기 힘든 우리네 현실은 과시문화와 자본주의 폐해의 합작품이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