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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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유태민족주의자 2백명이 텔아비브 미술관에 모였다. 국가 하이크바의 연주가 끝나자 데이비드 밴-구리온이 이스라엘 독립을 선포했다. 12시간뒤인 15일 새벽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트란스요르단연합군이 침공했다. 다음해 7월 강화조약을 맺었으나 다툼은 끊이질 않았다. 67년에 "6일전쟁", 73년에 "키프르전쟁"을 비롯해 크고 작은 마찰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싸움으로 얻은 국가라 할만하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지배하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다. 수세기 동안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이 "야곱의 집으로 돌아가 살자"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881년 제정러시아 알렉산드르 황제의 암살 후다. 대학살을 겪으면서 수십만명의 유태인이 러시아 국경을 넘어 도망나왔다. 러시아계 유태인 의사 레오 핀스게르가 시온으로 돌아가자고 자극했다. 1차로 16명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미미한 시작이었다. 이 운동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으나 1896년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 데오도르 헤르즐이 유토피아적 정치소설 "유태국가"를 내놓으면서 운동이 조직화됐다. 헤르즐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첫 시온회의에서 선언했다. "나는 바젤에서 유태국가를 창설했다. 5년내에 아니면 50년 내에는 틀림없이 모든 사람이 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과로로 4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으나 미래 투시는 정확했다. 바젤모임이 있은지 51년만인 1948년 이스라엘은 국제연합(UN)의 지지아래 독립했다. 지난달 30일 이 나라 건국 50주년 기념식에서 베냐민 네타냐후총리는 "이스라엘은 현대판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인이 있게한 것으로 뿌리깊은 귀속의식과 국방군제도를 꼽는다. 오랜 역사와 이웃과의 갈등이 역으로 국민의 아이덴티티형성에 기여했다는것이다. 금년에 우리도 건국 50주년을 맞는다. 이스라엘과 비슷하게 건국에 유엔의 도움 또한 컸다. 현 IMF 고통이 긴 역사전통과 어우러져 국가발전의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