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 (기고) IBRD시대 온다

> 장형수 이제 "IMF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정책권고면에서 IMF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거시경제정책과 국제수지 관리면에서의 현안이 이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동안 우리는 외환보유고의 조기확충과 고금리정책의 완화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두어왔다. 지난 6일 2.4분기 정례협의에서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을 바탕으로 콜금리를 계속 인하한다는데 IMF와 합의함에 따라 금리수준에 대한 정책의 자율성을 어느정도 보장받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금융경색으로 인하여 한국은행이 환매채금리와 콜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몇몇 대기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기업들이 시중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금리수준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금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인 기업의 신용리스크가 떨어지지 않는 한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은 경제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신속한 구조조정뿐이다.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들을 금융기관이 바르게 가려내어 그 부실정도가 더 심해지기 전에 정리해야만 살아남은 기업들의 신용리스크가 회복되어 시중실세금리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우리나라의 위기는 거시경제정책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금융.기업.노동부문의 비효율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거시경제정책에 의한 위기해결법은 근본적인 구조개혁없이는 기껏해야 일시적인 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은행(IBRD)의 중요성을 짐짓 과소평가한 감이 없지 않다. IMF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구조조정 합의사항도 차분히 들여다보면 금융시장 개혁, 기업지배구조 개혁, 노동시장 개혁, 경쟁정책, 사회안전망 확충, 공기업 민영화 등 세계은행이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이제 "IBRD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초기단계에서는 긴급자금동원능력이 뛰어난 IMF가 앞장서서 개입하여 개괄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짜지만 막상 구조조정의 전문적인 세부사항으로 들어가면 세계은행과의 정책협의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세계은행이 명실상부한 구조조정정책 권고기관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난 2월의 1.4분기 정례협의 이후부터 이미 이 단계에 서서히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은행 내부의 분위기는 한국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OECD에 가입할 만큼 소득이 높은 한국에 대해서 세계은행 전체 대출액의 50%를 배정하는데 따른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반발과 지금까지 지원해준 50억달러가 뚜렷한 성과감독조건(performance monitoring indicators) 없이 특혜 인출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앞으로 지원하는 구조조정차관(Structural Adjustment Loan)에 대해서는 세계은행의 지원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할 전망이다. 또한 IMF와 세계은행이 해당국 정부와 협상을 하거나 중요사항을 논의중일 때 금기시하는 것들이 있다. 이들 국제금융기구와 최종합의가 되지 않은 사항은 언론 등에 공개를 해서는 안되며 최종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해당국 정부가 IMF.세계은행보다 먼저 발표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난 12월24일의 IMF와 G7자금 조기지원 발표 당시, 그리고 최근의 주식기금과 구조조정기금 관련 발표에 따른 혼선 등은 이들 국제금융기구를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세계은행과의 협상전략은 무엇보다도 세계은행이 우리나라에 자금지원을 해야할 명분을 계속 제공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먼저 세계은행 지원자금은 부실기업지원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쓰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 연후에 중장기 구조조정계획의 마스터플랜부터 세계은행과 "조용히" 협의해 나가야 할것이다. 또한 세계은행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정책권고의 최우선순위를 두고있기 때문에 급격히 증가하는 실업자에 대한 대책을 위해서 세계은행 자금을 활용하는데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세계은행은 구조조정의 일반론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성이 있지만 한국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그 이해정도가 우리만큼 깊지가 않다는 점이다. 우리 협상팀은 세계은행팀이 우리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시험해보고 쉴새없이 숙제를 던져서 한국의 특수성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나온 세계은행의 정책권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그동안의 IMF와의 정책협의는 앞으로의 IBRD와의 정책협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경제가 넘어야할 난관만큼이나 "IBRD 시대"는 우리에게 바싹 다가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