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관 정부가 구제 '금융개혁 잘못돼 간다'

정부 스스로 금융구조개혁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라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 정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실제 움직임은 딴판이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국책은행으로 만들어 구제한게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외국투자자들이 한국의 구조조정의지를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새한종합금융을 인수토록 결정했다. 구조개혁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책이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거평그룹이 부실해진 새한종합금융을 계열에서 분리한다고 발표한 12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산업은행이 옛 자회사였던 새한종금을 다시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따라 산은은 이사회를 열고 거평에서 새한종금을 무상으로 인수(대상 주식 2백75만주 37.7%)키로 의결했다. 새한종금은 작년 1월 국책은행 자회사를 정리하라는 재경부 지침에 따라 산은이 팔았던 회사다. 1년을 갓 넘긴 시점에서 부실해진 회사를 다시 거둬들이는 셈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새한종금 파산에 따른 금융경색을 막고 7천억원정도에 달하는 산은의 새한종금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인수를 하게 된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은 새한종금을 정상화시켜 다시 팔기로 했지만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퇴출시키겠다고 외쳐온 금융당국은 호응을 얻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이미 부실해진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각각 1조5천억원씩 출자했다. 이로인해 국제통화기금(IMF) 등 외국금융기관에서 "퇴출시켜야 할 금융기관을 끌고 간다"는 비난을 사온터다. 정부출자는 엎지러진 물이었으나 문제는 그이후부터다. 외국인들은 여전히 2개은행의 자구노력이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인원을 1천8백40명 줄여 6천명으로 감축했고 국내외 점포 50여개를 통폐합했다. 서울은행도 1천5백여명을 감축해 5천9백여명으로 줄이고 50여개 국내외점포를 정리했다. 외국금융계 관계자는 "대형 금융기관이 부도날 경우 있을수 있는 금융대란을 막기위해 정부가 나설수 있으나 그 이후 정부의 관리능력이 의심을 받고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선진국 같으면 인원이나 점포의 절반이상을 정리하고 거액예금자에 대해서도 적잖은 손실을 감수토록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개은행의 예금인출소동을 우려해 2000년까지 원리금을 보장하겠다고발표했다. 게다가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예금의 판매를 허용, 이른바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부실금융기관에 묵인해 줬다는게 외국금융계의 시각이다. 2개 은행 주가가 2천-2천5백원으로 떨어짐에 따라 액면가 5천원에 출자한 정부는 1조5천억-1조8천억원을 까먹은 상태다(평가손). 앞으로 주가가 더 떨어지거나 부실이 늘어나면 해외매각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덕훈 박사는 "한국정부와 국회가 부실금융기관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의심하는 외국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미국 무디스사가 19개 국내은행의 신용등급을 11일 일제히 떨어뜨린 것도 바로 이런 의심이 쌓인 탓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