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나환자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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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나이가 눈먼 거지 앞을 지나다가 한 사람은 동전을 꺼내주었지만 다른 사람은 그대로 지나쳤다. 그들 앞에 사신이 나타나 자선을 베풀지 않은 자는 곧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자선을 베풀지 않은 사나이가 다급히 말했다. "다시 돌아가 자선을 베풀겠습니다" 사신이 대답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설 때, 그 배밑창에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바다에 나선 뒤에 살펴보겠는가" 유태인들에게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남에게 베푼다는 것은 항상 사심없이 모든 것을 나누어 갖는다는 마음의 준비가 돼있어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선이나 봉사는 일단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난 뒤에 시작하는 것이 상례지만 세상에는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일생을 희생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엊그제 72세로 타계한 성 라자로마을 원장 이경재 신부는 28년동안 나환자를 섬기며 그들과 함께 생활해 온 성직자였다. 70년대초만해도 나환자는 AIDS환자보다 더한 냉대와 무관심속에 살아야했던 "천형의 죄수"였다. 한번 발병하면 가족들과도 생이별을 해야했고 지위도 명예도 잃었다. 오죽했으면 환자였던 어느 시인은 "해와 하늘 빛이 서러워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고 했을까. 성 라자로마을에는 지금 20여개동의 수용시설과 수녀원이 들어서있고 1백여명이 수용돼 있다. 아랫마을에는 음성환자 70여세대가 보금자리를 꾸미고 산다. 그동안 나병연구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만도 70여만명에 이르고 성형수술로 제얼굴을 되찾은 환자도 7백여명이나 된다. 생전에 항상 나환자들은 우리를 대신해 고통을 짊어진 "작은 예수"라고 했던 이경재 신부가 오는 21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릴 "해외동포 나환자를 위한 자선음악회"를 앞두고 훌훌 세상을 떠났다. 영화 "벤허"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함께 나환자들이 완치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라자로마을에서도 예수대속의 의미를 깨달은 환자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고통을 딛고 일어선다면 이것 또한 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