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포기할수 있는 능력..김재우 <(주)벽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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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를 "안방에 가서 들어보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서 들어보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말로 표현했다.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우리에게 결단을 내린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보다. 늘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가 지금누구편을 들어주고 안들어주고 하던 한가로운 상황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문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을 결정해 나가는 것이다. 며칠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에 얽매여 아직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 내용이 어쩌면 거울에 비친 우리의 참모습일 것으로 생각해 본다면 결코 예사롭게 넘길 일은 아니다. 그동안 인기를 끌어온 드라마 "용의 눈물"의 태종 이방원은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통해 등극한 이후에도 오로지 절대 왕권의 확립만을 위해 사사로운 것들을 모두 포기하는 왕도의 알맹이를 보여 주고 있다. 자신에게 한 평생을 충성해온 공신들은 물론 본인의 처가권속과 사돈집안까지 멸문함으로써 외척뿐만 아니라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 재위 18년동안 이조 오백년의 기틀을 닦아 놓았다. 그가 오늘의 후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은 왕권 확립을 위한 그의 명료한 목표와, 인간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느껴지리 만치 냉정하게 세상적인 관심사를 포기하는 능력때문은 아닐까. 불과 몇주전에 국제통화기금(IMF)극복을 위해 추진하지 않기로 한 주요한 결정들이 번복되는 것을 보면서 인기없는 결정만 해야 할 시점의 우리 지도자들이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고민하는 보통사람들의 판단기준으로되돌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