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코리아데스크들이 본 한국의 개혁] 가급적 빨리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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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개혁을 안하겠다며 실제로도 안하고 태국은 하겠다고 약속한뒤 그대로 이행하는 반면, 한국은 개혁하겠다고 말은 해놓고 실제론 하는게없다" 월가의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 나도는 얘기다. 한국계 은행 및 기업들에 대한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월가의 코리아 데스크들이 갖는 실망감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코리아 데스크들은 지난달에 이어 18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제2차 그룹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하고 "한국인들은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개혁 조치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들은 최근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국내 은행들의 신용 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한 것도 "기업 도산이 본격화되면서 은행들의 부실 역시 심화될 것임을 고려한 조치"라고 입을 모았다. 본인들의 요청에 따라 본인과 소속은행을 익명으로 처리한다. ======================================================================= * 미국계 A은행=무디스의 한국계 은행들에 대한 신용 등급 하향 조정은 "구조 조정을 서둘러라"는 마지막 경고다. 한국의 현상황은 외환 위기가 최악을 치달았던 작년 11, 12월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김대중 정부가 약속한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이곳 투자자들의 시선이 갈수록 차갑게 바뀌고 있다. 예컨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부도난 거평그룹의 부실 금융계열사들을 인수토록 하는 등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구조 개혁이 지지부진해지자 이곳의 대형 투자자들이 발길을 태국 등 다른 지역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 은행만해도 4-5개의 미국 유수 부동산 투자회사들이 한국 부동산 매물을 알선해 줄 것을 요청해 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개방 일정이 불투명해 투자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곳이 있다. 이들은 자산 규모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대형 부동산 투자회사들이다. 한국에 5-6억달러 이상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곳도 있다. 제시한 조건도 한국에 유리한 것이었다. 사옥 창고 공장 공장설비 등을 일단 매입하되 원 소유기업에 15-20년 리스해 주고, 만기가 끝난 뒤 잔존가격으로 재매각할 수 있다는 등의 구체적인 조건까지 내놓았다. 정치권이 개혁 입법을 외면함으로써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외국인들을 스스로 내쫓고 있는 셈이다. * 미국계 B은행=한국은 무슨 일부터 해야 하는지 앞 뒤를 구별하지 못하는것 같다. 환란의 주범으로 전직 고위 관료와 기업인 일부를 지목하고 사법 처리하는일은 결코 급한 작업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네 탓 공방만 야기했다. 한국의 상황은 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더구나 노동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제부터 한국의 기업 도산이 본격화될 것이고, 은행들의 자산 부실화가 가속화됨으로써 자칫 한국이 또 다른 위기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다행히 무역수지가 계속 큰 폭의 흑자를 내고 있지만, 워낙 악재들이 산적해 있는 바람에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은행을 비롯한 월가의 대부분 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대출 한도 총액(크레딧 라인)을 계속 줄여 나가고 있다. 신규 자금 대출은 한국측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 미국계 C은행=한국 기업이나 은행들은 중-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데는 프로 선수지만,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단기 플랜이 없다. 최근 대기업들이 2000년까지 부채비율을 얼마로 낮추겠다는 식의 구조 개혁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중장기 계획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당장 올 상반기중에, 늦어도 연내에 무슨 사업들을 정리할 것인지가 훨씬 시급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한국이 2차 외환 위기에 빠질 것이냐 여부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선택에달려 있다고 본다. * 미국계 D은행=한국의 문제점에 대해 여섯가지 사항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 정부가 말로만 "구조 개혁"을 주장할 뿐 실제로 이행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과 같다는 인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노동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세째는 과연 한국인들 사이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지 의문이다. 대기업들의 정리 해고가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이고, 기업 도산도 6.4 지방선거 이후에 물꼬를 틀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넷째 한국 정부의 관치금융이 여전히 온존함으로써 필요한 구조 개혁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섯째 최근 외환은행이 독일계 은행의 투자를 끌어 들이겠다고 발표까지 해놓고는 난관에 봉착하는 등 성급한 언론 플레이가 오히려 불신을 높이고 있다. 여섯째는 한국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경제 상황 역시 한국에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중국에 대해서도 불안해 하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 미국계 E은행=대부분 미국계 은행들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아직 신뢰감을버리지 않고 있다. 한국이 지금은 시행 착오를 겪고 있지만 결국은 개혁의 정도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해야 할 개혁이라면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은행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국제결제은행(BIS) 타령만 하면서 중소기업 등 꼭 대출이 필요한 곳까지 외면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대출 원칙 등을 세워 빌려줄 수 있는 데만 빌려주는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본다. * 유럽계 F은행=한국이 개혁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대기업들이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려 해도 외국인들이 터무니 없는 헐값을 요구하는 바람에 벽에 부딪쳐 있는게 사실이다. 특히 기업들의 경우는 장기적인 자산 가치에 비해 단기 채무가 너무 높아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이 딱하다. 최근 부도 위기에 빠진 동아그룹만 해도 부채 비율 자체는 그리 높은게 아니다. 문제는 단기 자금이 안 돌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다른 유럽계 은행 등과 협의해 한국의 은행들에 해주었던 것처럼기업들에 대해서도 단기 부채를 장기 채무로 전환해 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예컨대 1년 미만짜리 자금을 3-4년짜리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는 채권 은행 쪽에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유동성 부족으로 인해 기업들이 흑자 도산을 낼 경우 은행들에도 득이 될리만무하다. 다만 기업들이 구조 조정에 보다 성의를 보이고, 가시적인 단기 계획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