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괴로운 산업은행 총재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사지로 보내고 싶겠습니까" 이근영 산업은행총재가 25일 자회사인 산업증권 폐쇄방침을 밝히자 이를 지켜본 임원이 한 말이다. 국책은행인 산은도 과거 많은 사기업들처럼 잇달아 자회사를 설립했다. 은행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게 당시 설립 이유였다. 이날 문을 닫겠다고 한 산업증권만 해도 산금채판매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 1백% 출자해 만든 회사다. 산은은 지난 3월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면서 부실덩어리인 산업증권을 살리려 했다. 한술 더떠 비난여론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후순위채까지 사주려 했다. 이 총재는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선지 폐쇄라는 말을 사용하길 주저하는 듯했다.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산은은 "폐쇄" 대신 "정리"를 바랐다. "우리는 외국증권사와 합작을 해 살리고 싶은데 재정경제부가 그렇게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일단 폐쇄한다고 하고 연말까지 살리는 방법을 연구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산은으로 몰려든 산업증권 노조원들은 이런 산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는지모르는지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 총재는 오전 10시40분께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한국은행으로 가려다 문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산업증권 노조원들에 둘러싸여 곤욕을 치러야 했다. "꼭 필요하다고 만들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아무 대책도 없이 문을 닫느냐" 노조원들의 함성이 이 총재의 발목을 잡았다. 허귀식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