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주리호 퇴역

1945년 7월26일 독일 베를린 교외에서 미.영.중 수뇌들은 "포츠담선언"을 발표했다. 종전후 일본의 처리방안을 명시하고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선언이었다. 일본이 이를 묵살하자 미국은 8월6일 히로시마에,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또 소련은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해 일본의 숨통을 조였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10일 일본은 포츠담선언 수락을 결정했다. 그러나 주전파의 옥쇄를 각오한 국체수호고집으로 진통을 겪다가 최후에 일왕이 항복결단을 내렸다. 8월14일 밤11시50분에 끝났고 15일 정오에 방송됐다. 미국은 30일 일본본토를 점령했다. 그리고 9월2일 도쿄만에 정박한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문서가 조인되면서 태평양전쟁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당시 점령군사령관인 맥아더장군앞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한 일본대표사절단장인 외무상은 주중공사로 잃다가 상행 홍커우공원에서 윤봉길의사의 폭탄세례를 받아 중상을 입었던 시게미스 마모루 바로 그 사람이다. 미주리호는 2차대전말인 44년 건조돼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혁력한 무공을 세워 2차대전때 3개, 한국전쟁때 5개의 훈장도 탔다. 길이 2백71m, 최대너비 33m나 되고 승무원만도 2천7백명이나 되는 거함으로당시 주요장비로는 구경 40cm의 대포 9문, 구경 12.7cm의 고각포 20문과 다수의 기관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91년 걸프전때는 이라크내 목표물들을 향해 토마호크마사일과 16인치 대포를 날리기도 했다. 그동안 워싱턴주 브레머튼항에 정박해있던 미주리호가 마침내 퇴역해 지난 23일 영구보존장소인 하와이 진주만을 향해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진주만공습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는 에리조나호 옆에서 또 하나의 전쟁기념관으로 활용될 예정이란다. 항복을 받아내던 그날의 광경을 목격했던 퇴역군인들과 시민들을 태운 수백척의 보트가 미주리호를 전송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미주리호가 "역사에 현장"으로 길이 남아 과거 일본의 역사를 증언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