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익없는 번영 .. 김형근 <유통부장>
입력
수정
김형근 마케팅역사상 1994년은 가격파괴의 원년으로 기록된다. 이해 일본시장에서는 가격파괴현상이 봇물을 이뤘다. 맥주 콜라 등 식품에서부터 세제 섬유제품등 생활용품과 가전 자동차에 이르는 전분야가 그대상이었다. 90년대 초반 버블 붕괴후의 불황과 달러당 1백엔 안팎의 초엔고가 그 원인이다. 옛 소련과 동구, 인도 중국 등 저임금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대경쟁시대(Mega Competition)에 들어선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대형 슈퍼마켓체인인 다이에는 그해 4월1일 맥주, 양주가격을 인하했다. 주세인상을 앞두고 있었으나 오히려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이유는 주류할인점의 염가판매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자스코 세이유 이토요카도 등 대형유통업체들이 뒤를 따랐다. 세븐일레븐 로손 등 편의점까지 확산됐다. 다이에는 당시 벨기에산 캔맥주(330ml)를 1백28엔에 팔았다. 7만케이스(1케이스당 24개)로 잡았던 연간 판매목표치는 2백만케이스를 넘어섰다. 인기가 급상승해 없어서 못팔정도였다. 요즘 국내 유통업계에도 가격파괴가 대유행이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다. 앞선 일본과는 경우가 약간 다르지만 어쨌든 IMF시대가 낳은 또하나의 신드롬이다. 가격파괴의 원조격인 할인점은 말할것도 없고 편의점 슈퍼마켓에 이어 고품격을 자랑하던 백화점까지 가격파괴에 동참하고 있다. 소비자입장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모백화점은 얼마전 자장면 한그릇을 1천2백원에 팔았다. 12년전 가격 그대로다. 어떤 할인점은 5만원이상 구매고객에게 라면 1상자를 줬다. 자동차나 휴대폰을 경품으로 주는가 하면 심지어 공개추첨을 통해 최고 3백만원부터 10만원까지 주는 현금경품행사까지 나타났다. 노마진 세일이 등장하고 냉장고 에어컨 등을 공장도가 이하로 판매하기도 했다. 남기는 것은 고사하고 "이익없는 번영"이라도 유지하려는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이같은 가격파괴를 환영한다. 국내 유통업체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상품을 팔았다는 것을 한두번은 겪어 본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똑같은 의류가 백화점이나 지하상가로 들어가면 남대문 동대문시장의 3~4배 값이라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로 알고있다. 근사한 건물에 좀더 쾌적하게 쇼핑할수 있다는 이유로 공간적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때로는 폼생폼사하는 겉멋이 들어서, 또 때로는 지금과 같은 불황을 전혀 예측하지못한채 과소비에 젖은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점도 없지않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이같은 가격파괴를 보는 시각은 마냥 곱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동안의 경험탓인지 설마 손해를 보면서까지 팔겠느냐는 의문에서다. 또 경기가 나아지면 원래 가격으로 되돌아갈게 뻔하다고 치부한다. 94년당시 일본의 유통전문가인 아쓰미 리테일링센터대표는 "일본의 가격파괴는 따지고 보면 상품 원가구성의 파괴"라고 진단했다. 때문에 "파괴라기 보다는 정상화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가격파괴가 그럴진대 요즘 국내유통업체의 가격파괴는 더 말할나위가없을 것이다. 국내 유통업계는 IMF를 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기회에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적어도 "소비자를 봉"으로 여겨온 사고의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외국 대형유통업체들이 속속 입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IMF로 소비자들이 알뜰해지고 냉정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손님을 끌기위한 일시적 영업방편으로서의 가격파괴여서는 곤란하다. 소비자와 함께 "진정한 가격파괴"를 추구할때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