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뮤추얼펀드의 토양'..투기없는 합리적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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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산업에 "은행 시대"는 가고 "증권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달 27일 미국 투자금융연구소(ICI)는 월가 사람들의 이런 자부심을 확인시켜 주는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4월말 현재 뮤추얼 펀드의 수탁잔고가 5조4백83억1천7백70만달러로 "5조달러 벽"을 넘어섰다는 통계였다. 세계 은행계를 쥐고 흔든다는 시티 체이스맨해튼 등 미국 5천5백여개 은행들의 작년 말 현재 총 수신고(5조1천7백억달러)를 바짝 다가선 규모다. 은행들의 저축계좌 등 각종 수신 상품은 이제까지 "저금"의 대명사로 통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자리를 증권 투자신탁의 일종인 뮤추얼 펀드가 낚아채기 일보 직전이다. 미국 내 9천여개 뮤추얼 펀드의 시장 규모는 82년에만 해도 3천억달러에 못 미쳤다. 1조달러대에 진입한 것은 90년 들어서였다. 8년도 안되는 사이에 다섯 배나 불어나는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인 것이다. 뮤추얼 펀드가 급성장함에 따라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인 투자자금이 우세를 보였던 미국 증권시장 판도는 요즘 기관투자 자금의 "2대1 우세"로 역전됐다. "증시 기관차"로 불리는 뮤추얼 펀드 산업의 초고속 성장은 최근 몇 년간 미국 증권시장이 공전의 활황을 거듭하고 있는 까닭을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투기로 흐르기 쉬운 개인 투자자들의 돈을 흡수해 합리적인 분산 투자에 나섬으로써 미국 증시의 "체력"을 높인 주역이 바로 뮤추얼 펀드다. 뮤추얼 펀드의 고도 성장을 떠받치는 주체는 "베이비 부머(boomer)"로 불리는 미국의 40-50대 중장년층이다. 소셜 시큐리티(사회보장) 등 복지예산 축소에 위기의식을 느낀 이들이 노후보장 수단으로 이재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 주요 수단으로 뮤추얼 펀드를 지목했다는 얘기다. 뮤추얼 펀드가 이렇게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금리 구조와 부동산 시장의 상대적인 안정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은행의 어떤 수신 상품에 돈을 맡겨도 연간 이자율이 연5%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부동산 투자로 한몫 잡거나 "떼 돈"을 벌기도 힘들어 졌다. 이런 상황에서 돈이 뮤추얼 펀드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국도 "증시 살리기"의 일환으로 미국식 뮤추얼 펀드 제도를 곧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실물 경제를 질식시켜 온 살인적 고금리 구조를 종식시키고 부동산 투기를 항구적으로 추방시키는 일이 먼저 서둘러야 할 순서라는 게 월가 전문가들의 충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