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시아 성학회' 특별칼럼] (8) '영화 서편제' (중)
입력
수정
[ 영화 서편제 정신의학적 분석 (중) ] 조두영 동호는 왜 유봉과 송화를 버리고 도망갔는가. 거기엔 누구나 다 이해할만한 까닭이 있었다. 첫째 가난, 정상교육 부재, 하기싫은 북채잡이 노릇이 그 이유로서 동호는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둘째 동호는 내부에 잠재돼있는 유봉을 향한 분노때문에 언젠가는 자제력을잃고 유봉에게 가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호에게 유봉은 보호자요 교육자요 가족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봉에 대한 증오가 사랑보다 훨씬 강해져서 그는 그대로 있을수가 없었다. 그 증오와 분노는 어디서 온 것일까. 유봉은 먼 옛날 동호에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아간 사람이다. 어린 동호는 유봉과 과부인 어머니간 성생활을 여러번 목격했다. 어린 그의 눈에는 그런 어른 남녀의 행동이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으로 이해됐을 것이다. 또 그런 폭력을 당하고서도 오히려 남자에게 굴복 순종하는 어머니 모습에당황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게다가 동호는 자기 어머니가 유봉의 씨앗을 낳다가 죽는 모습을 창구멍으로지켜보았다. 여기서 이런 사태의 근본 책임이 있는 유봉에 대한 복수심이 점차 생겨났을 것이다. 셋째 유봉에게서 알게 모르게 받았음직한 구박이다. 유봉은 남자아이인 동호를 송화보다 더 엄격하게 키웠다. 특히 유봉은 동호가 북채잡이였음에 한가닥 질투조차 느꼈을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북과 소리는 음과 양으로서 북장단이 소리를 밀고, 달고, 맺고, 풀게 함으로써 소리와 맞아야"한다. 동호의 북과 북채는 남성성 또는 양의 상징인 반면 여자인 송화의 소리는 여성성과 음의 상징이다. 즉 소리하는 송화의 상대는 북치기 동호였기에 유봉은 점차 커지는 청소년기동호의 남성성에 대한 경쟁, 질투, 두려움을 느꼈고 이것이 부지불식간에 동호에 대한 구박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넷째 동호가 아주 어린시절 어머니가 밭에서 김을 매면서 걷기 시작한 동호를 보호하기 위해 밭옆에 말뚝을 박고 그를 끈으로 말뚝에 매달았다. 이것이 동호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당시 동호는 분리.개별화기로 어머니 곁을 떠나보는 훈련을 하는 시기였다. 말뚝과 그의 배를 두른 끈은 행동반경을 축소시켜 그를 압제하에 있게 한 것이다. 따라서 동호는 그 영향으로 그뒤에도 행동반경과 자유를 구속하는 어떤 것에도 반항하고 거기서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껴왔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