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일자) 어음폐지의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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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가 3년내에 어음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우선 당좌개설요건을 강화하고 어음발행한도제를 도입해 어음유통량을 줄여나가고 2001년이후에는 어음제도를 아예 없애겠다는 구상인 것 같다. 자민련이 만기 60일이상 어음발행을 금지하고 2001년에는 어음제도를 없애기위해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나온 것이다. 우리는 어음제도를 개선하려는 여당권의 움직임을 매우 의미있고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현재 관행화돼있는 어음제도가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IMF이후 어음결제기간은 평균 1백18일이라는게 관계당국의 조사결과다. 물건을 만들어 납품하고 어음을 받아 현금화하기까지의 기간이 그렇게 오래고보니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은 당연하다. 현재와 같은 고금리상황에서 할인료부담이 엄청날 것은 물론이지만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날 경우 꼼짝할 수도 없이 연쇄부도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중소기업의 보편적인 여건이고 보면 어음결제관행의 근본적인 개혁은 시급하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어음제도를 폐지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빚어질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3년정도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여당권의 구상은 일단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두 여당이 내놓은 어음제도개선방안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듯한 감이 짙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어음문제는 본질적으로 통화정책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고 봐야 한다. 물론 당좌개설요건도 강화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1년이상 영업을 한 사업자로 자격요건을 강화한다고해서 부도어음이 줄고 연쇄부도도 감소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60일이내 결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하도급법 등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어음결제기간이 4개월로 늘어난 까닭은 따지고보면 간단하다. 기업자금난 때문이다. 우리는 통화공급량이 적정수준인지 아니면 부족한지, 그도 아니면 과다한지를 여기서 결론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여당권이 정말 어음을 없앨 생각이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통화정책을 어떻게 해나가야 무리없이 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음은 결코 법화인 한국은행권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지불수단이자 구매력이라는 점에서 그 역할에 큰 차이가 없다. 바로 그런 어음을 없앤다면 그 대체수단으로 당좌수표활용은 어떻게하고 통화는 얼마나 늘려야할지를 따져봐야할 것은 당연하다. 발행규모가 총통화의 40%에 달하는 어음을 없앤다는 것은 실로 보통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엄청난 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말썽많은 어음제도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여당권에서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또한 떨쳐버리기 어렵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