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달라진다] (17) 3부 : 바뀌는 생활패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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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고풍 대유행 ] "세상사에 시달려가며/자꾸 흐려지는 내눈을 보면/이미 지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꿈이 생각나"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요 "하늘색 꿈". 앳된 얼굴의 여고생가수 박지윤(17)은 엉뚱하게도 그 옛날 80년대에 유행했던 곡을 리메이크해 데뷔곡으로 들고 나왔다. 박지윤같은 요즘의 10대에겐 가사내용이나 노래풍이 촌스럽게 느껴질 법도한데 결과는 기대이상의 성공. 어렴풋이 떠오르는 추억의 멜로디를 과거 "순수했던 시대"를 그리워하며 열창하는 "30대 오빠들"의 든든한 후원 덕택이다. 서울 여의도 통일 주차장에서 열고 있는 "50~70년대 그때 그시절-아버지의 이야기전" 전시장에 들어서면 시공간은 "60년대 읍내 풍경"으로 바뀐다. 허름한 이발소 만화가게 전파사가 늘어선 거리. 가위질 요란한 엿장수와 "뚫어"를 외치는 굴뚝청소부가 지나다닌다. 한국사회가 "향수병"에 깊이 빠져 있다. 지난해 일부 대중문화에서 감지되던 "복고바람"은 IMF관리체제시대를 맞아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의식주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다. 때맞춰 쏟아지는 "복고상품"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심지어 60년대형 좀도둑들까지 등장했다. 공연계엔 연초부터 시작된 복고풍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신파극 "불효자는 웁니다"와 "눈물젖은 두만강", 악극 "눈물의 여왕",완판창극 "춘향전"에 이어 60년대 극장쇼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와 변사극"엄마없는 하늘아래" 공연장에는 중장년층으로 가득하다. 동네 꼬마 시절 "전자오락실 전성시대"를 열었던 30대 샐러리맨들은 퇴근후PC앞에서 그 옛날 즐겼던 "갤러그" "제비우스"게임에 몰두한다. "촌티패션"으로 무장한 10대 청소년들은 신촌 등 젊음의 거리에서 뽑기 튀밥 솜사탕을 즐긴다. 20대 젊은이들은 주먹밥 보리밥 수제비 등 옛 먹거리를 찾아다닌다. 60년대초 개발된 "모나미 153" 볼펜, 지우개 달린 연필, 라면 연탄 내의 등 "70년대 상품"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키스바" "부라보콘" "뽀빠이" "산도"등 추억의 상품들도 속속 재등장하고 있다. 집들이 선물로 세탁세제 치약세트가 각광받는다. 소득을 절반가까이 줄여놓은 IMF체제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복고풍조"를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게 했다. 극심한 불황속에서 사람들은 옛것에서 낭만을 느끼고 위로를 받는다. 어려운 현실에 부딪쳐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찾기보다 "그때가 좋았지"하며 과거속으로 도피한다. 물론 복고풍의 열기는 삭막해지는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면은없지않다. 문화평론가 김성기씨는 "복고라는 현상은 현재 생활에 대한 회의와 권태에서비롯되는 것으로 향수가 담긴 옛 것에서 위안을 찾고자 한다"며 "하지만지나칠 경우 전망의 부재와 현실감 상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진단한다. 현실에서 도피해 언제까지 지나가 버린 "어린시절"에만 빠져있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