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2일자) 다시 떠오른 빅딜 추진설

한동안 물밑에 잠복해 있던 대기업간 대규모 사업교환(빅딜)이 임박한듯 하다. 엊그제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이 조만간 빅딜이 성사되리라고 밝힌데 이어 어제는 일부 언론에서 자동차 석유화학 반도체 등의 특정업체 이름까지 들먹이며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아직까지는 해당업체들이 부인하고 있어 성사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기업의 구조조정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국내외의 지적이 부쩍 고개를 들고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대기업집단의 철저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던 노동계는 지난번 2기 노사정위 출범을 앞두고 기업측의 고통분담이 미흡하다며 한시적으로 총파업까지 벌였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구조조정 결과를 좀더 지켜보자며 관망하는 자세를 보여 외자유입 규모가 기대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뿐만아니라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정권의 붕괴를 전후해 또다시 동남아 금융위기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기록적인 엔화폭락에 따른 후유증까지 겹쳐 자칫하면 구조조정 작업이 실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같은 여러 정황을 고려할때 김대중 대통령이 귀국한 직후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리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원래 기업의 구조조정은 시장논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최선이다. 정부도 5대그룹은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도록 했고 지난달 초에 발표된 5대그룹의 구조조정계획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신용경색이 지속되고 있고 곳곳에서 자산디플레이션에 따른 복합불황의 징후가 보이는 등 정상적인 시장질서가 무너진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빅딜이 어떤 형태로든 실현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후처리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과잉투자와 불황 때문에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등 거의 모든 주요산업의 가동률이 떨어져 막대한 유휴설비와 인원을 정리해야 하는 판에 다른 업체의 설비와 인원까지 떠안는 것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또 각 업체들이 안고 있는 엄청난 부채의 처리도 어려운 문제다. 부채를 그대로 인수하자니 내년말까지 부채비율 2백% 달성이 불가능하고 예외인정 또는 빚탕감을 해주자니 외국과의 통상마찰및 특혜시비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고용승계를 둘러싼 노조와의 마찰및 서로 다른 설비 기술 공장입지 기업문화 등으로 시너지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빅딜의 목적이 국제경쟁력 강화라면 먼저 과잉설비 부채규모 고용승계 등과 같은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논의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리하게 빅딜을 추진할 경우 5공시절 부실기업 정리때 겪었던 부작용이 되풀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