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 정서 형상화한 한국시 계승자 .. '박재삼 시전집'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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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소나무 가지에 쉴새없이 와서는/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사람아 사람아/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탐을 내는 사람아"(''천년의 바람''부분) 지난해 6월 타계한 시인 박재삼씨.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민족정서의 뿌리를 뜨겁게 노래했던 그의 1주기를 맞아 "박재삼 시전집"(민음사) 첫권이 나왔다. 생전의 시집 15권중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첫 시집 "춘향이 마음"(62년)부터 다섯번째 시집 "뜨거운 달"(79년)까지 초기시들이 수록돼 있다. 이후에 쓴 작품들도 한데 묶여 연말께 발간될 예정이다. 지난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삼천포 바닷가에서 자란 그는 학비 3천원이 없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사환으로 일하다 야간중학교에 다녔다. 은사인 김상옥 선생의 첫 시조집 "초적"이 나왔을 때 돈이 없어 그것을 공책에 모두 베끼고 애송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고려대 국문과를 수료한 뒤 53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 55년 "현대문학"에 시 "섭리" "정적"이 추천돼 등단한 그는 40여년간 한으로 대표되는 우리민족의 근원적 정서를 형상화함으로써 한국시의 전통적 서정을 계승한 시인이라는 평을 들었다. "네 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울음이 타는 강''부분) 67년 소설가 남정현씨의 "분지"사건 공판에 충격을 받아 고혈압으로 쓰러진 그는 66세로 숨을 거둘때까지 병마와 싸웠다. 건강을 묻는 문우에게 "병과 함께 가기로 작정했더니 한결 나아진 것 같다"고 했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