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노사정위원회와 국회 .. 복거일 <소설가>
입력
수정
뱃사람들의 일부가 승선을 거부해서 부두에 묶였던 제2기 노사정위원회가 가까스로 돛을 올렸다.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길들엔 여전히 불안이 어릴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의 근본적 문제점은 이념적 바탕이 단체주의(corporatism)라는점이다. 사회 전체를 산업및 직업 단체들로 조직해서 그 단체들이 산하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그들의 행동을 상당히 엄격하게 통제하는 단체주의는 이념치곤 아주 허술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단체주의는 사회의 구성 원리로 거론된 적이 거의 없었다. 개인들을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로 삼고 그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를 통해 사회적 선택을 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생리적으로 다르다. 그런 사정을 반영해서 노사정위원회는 확실한 근거나 또렷한 개념적 설계없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들이 자의적이다. 목적과 기능이 분명치 않고 조직과 규칙은 아주 허술하다. 현실적으로 국회의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지만 그런 대행의 근거는 명시된 적이 없다. 그동안 나온 얘기들로 판단해보면 노사정위원회의 목적은 "경제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가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그런 기능을 부여하는 "국민적 합의"가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 국민적 합의가 나온 적이 있었던가. 헌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것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식기관인 국회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국회는 노사정위원회가 이뤄낸 합의사항들에 의해 어떤 구속을 받는가? 노사정위원회의 구성에도 문제들이 많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과연 시민의 진정한 대표자라고 할 수 있을까. 두 노동 단체들이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면 노동조합에 들지 않은 다수의 노동자들은 누가 대표하고, "전경련"과 "경총"이 사용자들을 대표한다면 다수의 자영업자들은 누가 대표하는가. 그리고 소비자들은? 이런 물음들은 자연스럽게 나오고 아주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물음들은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다. 이 사실은 특히 정당들의 이념적 혼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얘기해준다. 단체주의에 바탕을 둔 기구는 제대로 운영되는 경우가 드물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들이 늘 정치적 협상에 지배된다. 공식적 합의는 그것을 강제할 권력이 있거나 모든 당사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큼 경기가 좋을 경우에만 지켜진다. 권력의 균형이 깨지거나 경기가 나빠지면 공식적 합의는 이내 파기된다. 제1기에서 합의된 정리해고 제도를 철폐하라고 요구하면서 제2기에 참여를 거부했다가 여론이라는 정치적 압력에 떠밀려 뒤늦게 참여하겠다고 나선 민주노총의 행동은 전형적이다. 불황과 실업의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있는 상태에서 어쨌든 노사정위원회는다시 돛을 올렸다. 해상보험에 들지도 않은 채 말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야당으로 노동법 개정을 반대했던 현 여당이 이제 그것을 시행할 명분을 얻는다는 것을 빼놓으면 기대 이익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라는 배가 항해를 무사히 마치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가 입을 손실은 너무 크다. 시민들 모두가 그것을 지켜보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그것은 목적항에 닿으면 영구히 거기에 정박해야 할 것이다. 단체주의는 우리 체제에 너무 이질적이다. 그것에 바탕을 둔 노사정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경제문제를 헤쳐나가기엔 너무 허술한 기구다. 대신 우리는 진정한 국민의 대표기구로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기능을 가진 국회에 그 일을 맡겨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회가 이내 마비됐다는 사실은 현 정권에도 상서롭지 못하다. 돌이켜보면 김영삼정권 내내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사정이 그의 실정을 낳은 토양이었다. 단기적 치적(달러 표시 국민소득의 상승, 물가 안정, OECD가입)을 위해 환율을 억지로 높게 유지한 것과 노동법 개정에 실패한 것이 이번 경제위기를부른 주요 요인들이었다.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자산을 크게 늘렸다. 그런 사정이 국회가 제대로 움직이는 계기로 작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