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경협] '황소걸음'이라도 통일 앞당겼으면 .. 이모저모
입력
수정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통일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통일소" 5백마리를 이끌고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의 허리를 잇는 일에 나섰다. 정 회장은 16일 오전 6시 넘어 청운동 자택을 출발, 일행과 함께 계동현대본사~임진각~판문점 통일의 집~중립국간시위원회회의실을 거쳐 오전 10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방북했다. ."고향 가서 기분이 좋아요. 돼지꿈도 꿨어..." 소떼 5백마리를 몰고 16일 방북한 정 회장은 오전 6시10분께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낸 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나서며 분단 이후 두번째로 고향땅을 밟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감색 양복에 갈색 외투와 흰색 중절모를 쓴 정 회장은 수행원들의 부축을받으며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섰다. 건강은 좋아 보였다. 방북일정 등을 묻는 질문공세에 정 회장은 검은색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올라 손을 흔들어 보이며 엷은 웃음을 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정 회장은 10여분 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 도착,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스포츠센터에 들러 머리를 단정히 손질하며 고향을 찾는 마음을 추스렸다. 그 사이 그의 방북에 동행할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정몽구 현대 회장 등 형제와 아들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거나 뒤이어 도착, 정 회장과 합류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설레는 표정으로 "감격스럽다" "돼지꿈을 꿨다"고 말했다. .오전 6시50분께 스포츠센터를 나선 정 회장은 그룹 임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방북단과 함께 승용차 4대에 나눠 타고 사옥을 출발했다. 이때 미리 출근해 사옥앞에 도열해 있던 현대 직원 1천여명은 태극기와 대한적십자사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현대건설 국내영업본부 직원 김한석(30)씨는 "고향을 찾고 싶은 심정을 이해한다"면서 "그의 방북으로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고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원들의 갈채를 뒤로 하고 정 회장 일행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 사무국에 들러 방북증명서 확인과 휴대품 검사등 간단한 절차를 밟은 뒤 자유로를 따라 그의 방북선물인 소떼가 있는 임진각으로 향했다. 정 회장의 다이너스티 승용차에는 김윤규 현대건설 부사장이 동석, 임진각도착때까지 방북 일정등을 설명했다. 김 부사장은 지난 89년 정회장의 첫번째 방북도 수행했었다. .정 회장은 오전 8시께 통일대교앞 5백m 지점에서 현대그룹이 마련한 방북환송식에 참석, 가족 친지 실향민 등 환영 인파들에게 답례했다. 정 회장은 환영인파에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소 한마리의 목에 꽃다발을 걸고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한 후 "소 1천마리 북한기증"을 상징하는 의식을간단히 치렀다. 이 행사에는 정회장의 아들 며느리 손자 등 가족 친지, 60여개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 실향민, 취재진 2백여명 등 6백여명이 참석했다. 환영행사장 옆에는 자유로를 따라 나머지 소 4백99마리를 태운 트럭 50대가약 1km 길이로 늘어서 장관을 만들어 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이른 아침부터 역사적인 정 회장 일행의 방북과소떼 지원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한 실무준비로 남북측 지역 모두 분주하게움직였다. 소떼 인도가 시작되기 30분전부터 판문점 북측지역에는 북한 병사 수십명이도열하기 시작했고 판문각 건물 주변에도 푸른색 양복을 입은 북측 관계자3~4명이 나와 "평화의 소떼"를 맞을 막바지 준비로 바삐 움직였다. 북측은 평소와 달리 이른 아침부터 대남 방송용 스피커를 통해 잔잔한 음악을 틀어 첨예한 군사대결의 장소인 판문점도 이날만큼은 평화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소떼 인도시간인 오전9시가 가까워 오자 북한 기자단 4~5명이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나와 취재에 나섰다. 소떼를 실은 트럭이 오전 9시께 판문점에 도착, 일렬로 도열하자 남북 적십자관계자들은 인계인수를 위한 수속을 밟았다. 인도인수 절차를 밟기 위해 잠시 트럭이 멈춰서 있자 소떼들은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듯 "음메에, 음메에" 울어대기도 했다. 트럭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 중감위사무실 동편 공터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평화의 집과 마주보고 있는 통일각 옆 공터에 집결했다. 이에앞서 남북한은 오전 8시40분께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에서 적십자연락관접촉을 갖고 방북자 명단과 운송기사 명단, 검역증 등을 주고 받았다. 이날 판문점에는 내외신 기자 50여명이 모여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 정 회장방북과 소떼지원을 둘러싼 국내외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정 회장 일행은 오전9시 정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 도착, 김형기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장의 안내를 받아 귀빈실로 들어갔다. 정 회장은 15분간 휴식을 취한 뒤 내외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방북에대한 소회를 밝혔다. 정 회장은 거동이 불편해 부축을 받을 정도였지만 기자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하는 등 건강은 비교적 양호해 보였다. 정 회장 일행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오전 9시50분께 귀빈실을 나와 평화의집 현관에서 취재진들을 위해 포즈를 취한 후 방북 장도에 올랐다. 평화의 집 현관에는 소떼를 실은 트럭을 북측에 인도하고 돌아온 운전기사 50명이 양쪽으로 도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정 회장 일행을 환송했다. 정 회장 일행은 판문점 중감위 회의실 남측 출입구를 들어선 후 오전10시정각에 회의실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땅에 발을 내디뎠다. 정 회장을 태운 다이너스티 승용차는 오전 9시55분께 중감위회의실 앞에 도착했으며 북적 연락관들이 영접준비를 마쳤다는 전갈을 보내오자 중감위회의실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방북길에 올랐다. 정 회장은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방북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향 땅을 밟게 돼서 반갑다"면서 감회어린 표정으로 짤막하게 소감을 밝혔다. 중절모와 베이지색 코트 차림을 한 정 회장은 혼자서 발걸음을 옮기기에 다소 힘겨워 하는듯 했고, 동생 세영씨의 부축을 받아 폭 10Cm의 파란색 줄선으로 표시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북측에서는 송호경 아.태평화위부위원장을 비롯, 20여명의 환영객들이 나와중감위회의실 북측 출입구 앞쪽에서 정 회장 일행을 맞았다. 송 부위원장은 정 회장 일행을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정선생이 오신 것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며 정 회장의 손을 잡고 인사말을 나눴다. 정 회장이 완전히 북한땅을 밟고 난 후 중감위 회의실안에서는 남북 적십자 연락관들이 접촉을 갖고 정 회장 일행의 사진과 인적사항 등에 관한서류를 교환하며 방북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정 회장 일행보다 앞서 15일 중국 베이징을 통해 입북했던 박세용현대상선사장 등선발대 7명은 이날 오전 8시40분께 판문각에 도착, 2층 베란다에서 줄곧 정 회장 일행을 기다렸다. 북측지역에서는 양장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8명의 여성들이 꽃다발을 들고 나와 정 회장 일행을 맞을 준비를 했다. 북측지역에 도착한 정 회장은 수행원 2명의 부축을 받아 북측이 마련한 벤츠승용차에 올랐고 일행들은 승용차 7대와 미니버스에 분승, 판문각으로 이동했다. 당초 예정과 달리 정회장 일행이 곧바로 평양으로 출발하지 않고 판문각으로 향하자 관계자들은 "아마도 환영행사를 갖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소를 실은 트럭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판문점 북측경비병 휴게실 동편광장에는 오전 8시45분께 북측 경비병 20여명이 등장해 트럭 인도.인수를 위해 대기했다. 북측 경비병들은 8시58분께 트럭이 북쪽으로 넘어갈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동편광장 군사분계선 너머 쇠말뚝을 제거하는 등 움직임이 다소 활발해졌다. 트럭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에 대한 사전점검이 끝난후 오전 9시 남북 양측은 군사분계선상에서 각각 5명씩의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갖고 트럭 인도.인수를 위한 최종 점검사항을 확인했다. 잠시후 오전 9시5분께 박병대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국장을 단장으로 하는한적인도요원 3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군사분계선 북측 5m 지점에 위치한아름드리 전나무 밑에서 북측 적십자회 인수요원 3명과 함께 트럭의 월선에대비했다. 소를 실은 트럭행렬 50대중 1호트럭이 군사분계선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6분. 소 8마리를 실은 1호트럭이 도착하자 북측 인수요원들은 군사분계선상에서차를 잠시 세우고 소의 숫자와 상태 등을 점검하고 바로 통과시켰다. 이어 2호차부터 36호차까지 잇따라 차량이 통과한뒤 1분여정도 차량통과가중단됐다가 다시 37호차부터 50호차까지 통과가 이뤄졌다. .오전9시30분께 소떼 인도 및 인수를 맡은 적십자 관계자들은 중감위 회의실 동편 공터의 군사분계선상에서 박병대 남측단장과 임순일 북측단장 명의로 된 인도인수증을 교환했다. 박 단장이 "소를 빨리 키워 새끼를 많이 낳아 식구가 늘어나기를 바란다"고기원하자 임 북측단장은 "잘 키우겠다"고 화답했다. 트럭기사들은 북한측 기사들에게 차량을 넘겨준 후 중감위 회의실과 군사정전위회의실 사이 통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돌아왔다. 한 기사는 "소를 싣고 북측에 넘어가니 북측 여성 10여명이 냉면을 준비해놓고 "먼길 오느라고 시장할테니" 먹고 가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북측은 이날 소 운반차량을 운전한 남측 기사들에게 백두산 들쭉술 1병,인삼곡주 1병, 려과담배 1보루씩을 선물로 줬다. 운전기사들은 북측 통일각에서 대기하고 있던 젊은 여성들이 "감사하다"는인사와 함께 이들 선물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정주영 명예회장 일행은 16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용순과 면담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북한 중앙통신을 인용해 평양발로 보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앙통신은 남북과 해외 모든 동포들의 조국통일 열정이 그 어느때 보다 고조된 상태에서 정 명예회장이 평양에 도착했으며 김용순은 그와 "동포애가 충만한 분위기 속에서 담화했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또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회장 정운업 등 관련 부문의 관계자들이 판문점으로 가서 정 명예회장 일행을 영접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정 명예회장이 한반도 분단 50여년 이래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방문한 최초의 한국 기업인이며 그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군이고 그의 가족 15명은 오는 23일 북한방문을 마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정 명예회장의 방북 사실을 아무런 논평없이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한바 있는 이 통신은 또 한국 정부가 며칠전 정 명예회장의 이번 방북을 계기로 남북한관계가 한걸음 더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