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두가지 '빅 아이디어' .. 김병주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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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그것 참 훌륭한 생각이야"라는 뜻이 아니라 "무슨 엉터리 같은 소리야"를 말할 때 "빅 아이디어"란 말이 쓰이는 줄 안다. 요즘 두가지 "빅 아이디어"가 세인의 눈길을 끈다. 먼저 도쿄의 빅 아이디어를 보자. 유럽연합이 공통통화 유러(Euro)를 발행하자 일본도 아시아 통화단위(Aaian Currency Unit:ACU)의 구상을 구체화할 모양이다. 자민당 "엔화 국제화 소위원회"는 엔화표시 정부채권관련 시장활성화,유통구조개선, 세제개편 등을 포함한 중간보고서를 9월까지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크다. 경제규모면에서 일본은 세계의 약 15%를 차지할뿐만 아니라 무역거래액에서도 약 12%를 점한다. 이에비해 세계 각국의 외화보유액중 엔화 비중은 7.1%(95년말 현재)에 불과하다. 엔화의 직접거래는 도쿄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외환시장 외에는 별로 성립되지 않는다. 일본 주요 경제단체들도 엔화 국제화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수출입 엔화표시 거래비중을 높일 계획이라 한다. 도쿄의 이같은 움직임에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반면 미국과 중국은 "엔화 경제권"에 일단 경계심을 표명하고 있다. 최근 외환시장은 엔화 국제지위제고 구상을 헛돌게 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외환시장에서 엔화환율이 이미 달러당 1백40엔선을 붕괴시키고1백50엔선을 향해 급락하고 있다. 서방 선진7개국(G7)의 엔화약세방지협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 일본 국내산업생산이 위축되고 전산업 매출액이 전년동기비 6.8% 감소해 55년이후 최악을 기록했다는 발표 등 악재가 겹치고 있다. 엔화 하락이 중국 위안화 평가절하로 연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러시아 경제도 극도로 불안하다. 이래저래 도쿄를 진원지로 하는 세계 대공황의 시나리오가 나돌만 하다. 경제대국 일본도 제 코가 석자인지라 아시아 이웃나라 통화위기 진정에 왜소한 기여밖에 못하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는 엔화를 중심으로 하는 ACU 구상은 그야말로 "빅 아이디어"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래도 국제 통화질서의 장기적 재편성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대응전략을 선택할 것인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다음 서울의 빅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정권교체 준비기간부터 재벌들의 기업업종교환을 뜻하는 "빅 딜"이란 말이 나돌더니 지난주에는 자동차는 삼성 -> 현대, 석유화학은 현대 -> LG, 반도체는 LG -> 삼성 등 구체적 방안이 곧 발표되리라는 보도가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빅딜 임박설을 터뜨리자 여권에서는 기업들 스스로 구조조정을 미뤄오다 정부개입을 자초했노라는 불가피성 주장으로 맞장구쳤다. 대통령도 귀국 성명에서 지원하는 뜻을 내비쳤다. 반면 야권은 정부권력 개입이 부당하다고 비판했고, 전경련은 "아는바 없다"는 입장이다. 무언가 있는 모양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일반국민은 궁금 답답하다. 현정부의 구두선은 "시장경제"이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자기 소유의 물건을 거래하려 모여 흥정하고 계약한다. 사유재산권과 자유계약권이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는 진정한 시장이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의 재산권이 보호되는 시민사회와 시장경제가 상승작용하면서 진화해온 역사적 교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으나 싫으나 재벌기업을 비롯한 모든 기업은 한국의 기업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양질의 상품공급, 고용창출, 조세납부 등으로 한국에 기여하면 한국기업으로 봐야할 시대다. 미우나 고우나 재벌총수도 기업인이다. 이들에게만 정당한 법적 보호막을 제거할 수 없다. 국내 진출 외국기업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민간기업부문에 산업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하고 유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강제성이 개입되어서는 시장경제의 혼과 기업인의 신명이 죽고 만다. 자칫 빅 딜은 엉뚱한 의미의 빅 아이디어로 전락할 수 있다. 부실금융기관 뒤처리에 분주한 금융감독위원회가 기업 살생부를 준비한다는소문이 한때 자자했다. 금감위는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퇴출기준만 만들면 족하다. 아무리 은행을 앞세운다지만 은행은 눌려지내는데 이력이 나있어 정부 눈치보기 바쁘다. 결국 살상되는 것이 부실금융기관 부실기업이 아니라 한국의 자유시장경제일까 우려된다. 관치로 망한 경제를 새로운 관치로 치유할 수 있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