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제갈공명과 사마중달'

유비가 죽고 제갈공명 혼자 촉을 다스리며 오장원에서 위나라의 사마중달과대치하고 있던 때다. 사마중달은 공명이 보낸 사신으로부터 그의 근황을 듣고 내심 마음이 놓였다. 공명이 오래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신이 전한 근황은 이렇다. "승상께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시고 밤이 늦어야 잠자리에 드십니다. 또 스무대 이상 매를 때릴 일은 모두 몸소 맡아 하십니다" 공명의 신하 양옹이 더 거들었다. "승상께서는 몸소 모든 장부를 일일이 살피시어 꼭 그럴 필요가 없는 일에까지 마음을 쓰고 계십니다. 무릇 다스림에는 중요한게 하나 있으니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래위가 서로의 일을 침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밭갈이나 밥짓기는 종에게 맡길 일입니다. 집주인은 그저 일이 잘 되는가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이문열 삼국지의 한 장면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김대중대통령이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었다. 한 기자가 "어제는 행사가 9가지나 됐는데 피곤하지 않으십니까"하고 물었다. 김대통령은 "9번째 행사를 치르고 나니 피곤하긴 합디다. 그러나 건강이 받쳐주니까 해 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만났는데도 못 만난 사람이 많아요" 김대톨영이 피곤하지 않을리 없다. 나라가 풍전등화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되도록이면 더많은 외국인을 만나서 "한국에 투자좀 하라"고 말하고 싶은 대통령의 심정은 오죽 할까. 국민 모두가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 뛰는 것같은 분위기에 바로 우리의 허점이 있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툭하면 골프를 친다. 휴가도 자주 간다. 섹스 스캔들에도 휘말려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잘도 굴러 간다. 시스템이 흘러 가기 때문이다. 자기가 할 일을 철저히 하고 남이 하는 일에 콩놔라 팥놔라 하지 않는게 미국 시스템이다. 이른바 "국가적 팀워크"라는 것이 그것이다. 클린턴은 그저 베개를 높이하고 맛있는 음식만 챙기면 된다. 중국에 가서 장쩌민주석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만 고민하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다 아랫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레이건 대통령도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작은 정부"를 만든게 대표적 사례다. 큰 줄거리만 잡고 나머지 시간은 캘리포니아에서 배우 시절 사귀던 친구들과말타기를 즐겼다.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단순화하는 과정이었음에 틀림없다. 미국인들에겐 휴식이야말로 대통령직의 고유특권이자 의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길게 봐서 그게 나라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시스템은 대통령이 나서야 일이 되는 체제다. 위로부터 지시가 없으면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할 시간도 없고 차에서 잠을 자야할 정도다. 이래서는 관료들의 자발적 참여와 창의가 나올 수 없다. 그러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텐데 괜히 나섰다가 핀잔을 받을까 걱정"이라는게 요즘 관료사회의 기류라는 소리가 들린다. 공명의 신하 양옹의 진언은 계속된다. "만약 집주인이 몸소 나서서 모든 일을 다하려 든다면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어지러워 끝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아는 것이 종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집주인의 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병길은 소가 기침하는 것은 걱정해도 사람이 길가에 죽어 넘어져 있는 것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진평은 자기가 쌓아둔 곡식과 돈의 양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양봉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