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국제금융이야기) (6) '엔-달러 환율구조'
입력
수정
1985년 9월 선진 5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가 비밀리에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만났다. 당시 막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던 미국은 환율의 변동을 철저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대원칙을 깨고 엔화의 강제절상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이후 엔화가치는 달러당 240엔에서 다음해 여름에는 150대로 수직상승했다. 이로인해 일본이 입은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종래 1달러 수출하면 240엔의 수입을 얻었는데 플라자합의 후에는 150엔밖에 쥐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일본은 "마른 행주도 다시 짜서 쓴다"는 정신으로 엔고불황을 극복했지만, 만약 제국주의 시절이었다면 세계대전을 유발할 수도 있는 미국의 폭거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의 의식구조는 흔히 "미국=좋은 나라, 일본=나쁜 나라"라는 등식에 고착되어 있다. 최근 엔화가치 폭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 역세도 이러한 등식에 의해 일본성토일변도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지난 15년간의 국제금융의 사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일본이 미국에 의해 휘몰린 정도는 지금우리가 겪고 있는 IMF위기사태를 방불하는 것이었다. 양국간의 긴장과 대립의 구도에서 최근 엔화폭락사태를 진단해 보기로 하자. 우선 미국의 입장에서는 엔화약세를 방조함으로써 그간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숙제-내수시장 활성화, 금융산업 개편-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엔화약세가 되면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현재 외환위기를 맞고 있는 동아시아제국들이므로, 이들의 원성을 통해 일본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의도가 작용했다. 바로 이때문에 미국의 세계금융총사령탑인 루빈 재무장관이 한때 150대의 엔약세를 용인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잘 밀고 당기면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미국은 일본에게 번번히 일방적으로 공헌할 것을 요구할뿐 아시아에 대한 리더십을 인정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 일본이 아시아통화블럭,아시아통화기금 창설을 제안했을 때, 미국은 극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가. 또한 일본은 엔이 강세로 선회하는 것을 미국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통화당국에서는 버블가능성에 대해 일축하고 있지만, 미국의 자산가격인플레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며 급격한 엔강세-달러약세는 외국자본의 대거이탈을 통해 미국의 버블을 파열시킬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아킬레스를 잡고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일단 미일간의 합의를 통해 엔화약세가 진정되었지만, 양국간의 줄다리기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재연될 경우 중국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즉각 위앤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이고 이는 1980년대의 중남미가 그러했듯이 경쟁적 평가절하를 통해 동아시아 공멸의 시나리오를 작동시킬 것이다. 미국의 무모한 일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외교적인 장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찬근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