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입장바꾸기 .. 천양희 <시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 구절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과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몇번이나 괴로워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것 저것 생각하다 보면 비로소 내가 잘 보일때가 있다. 내 부족함은 모르고 남의 흉만 들춰내고 내 잘못은 모르고 남의 허물만 꼬집었으며 남을 내 거울로 삼기보다 남을 내 표적으로 삼은 적이 많았음을새삼 깨닫게 된다. 며칠전 네덜란드와의 축구대전에서 참패를 했을 때, 국민들은 참패보다 더 큰 절망을 했었다. 이기는걸 보면서 IMF의 상처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던 열망이 좌절된탓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경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감독의 자리를 무참하게 박탈하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였으며 정당한 방법이었을까. 그 방법 밖에는 없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할수는 없다. 잘 할때는 영웅처럼 떠받들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죄인취급하는 이 나라의풍토가 서글프기까지 하다. 거기에다 냄비처럼 펄펄 끊었다가 금방 차갑게 식는 국민들의 심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인간은 가벼운 존재이구나 싶은 생각을 떨처버릴 수가 없다. 잘 했을 때 박수쳐주는 칭찬도 좋지만 잘못되었을 때 어깨 두드려주는 격려가 더 좋은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럴땐 역지사지란 말의 깊은 뜻을 다시한번 곱씹게 된다.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기전에 비난부터 먼저하고 남을 이해하기 전에내 자로 남을 재단하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지... 남의 입장이 되기전에 내 주장부터 먼저하고 남을 알기도 전에 내 생각만으로 남을 단죄하지는 않았는지... 아무튼 사람살이 사람노릇 잘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살아갈수록 더욱 실감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 수 있을까. 역지사지하며 살 수 있을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 보아야 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