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회장 일가의 북한 7박8일] (6.끝) '통일의 길 함께'

"정회장 일가의 북한 7박8일"은 방북단 15명의 증언을 토대로 본사 기자가재구성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순영 성우 명예회장,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정상영 KCC 회장 등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들을 지칭합니다. ======================================================================= 다음날 아침 우리는 친척들의 환송을 받으며 고향을 떠났다. 작은어머니는 "언제 또 오느냐"며 눈물을 찍어내셨다. 금강산 가는 배가 뜨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원산에서 공장들을 둘러본 우리는 비행기편으로 평양에 돌아왔다. 고향 방문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우리에게 김용순 위원장은 만찬을 열어줬다. 대동강초대소에서였다. 만찬장에는 커다란 원탁이 놓였고 형님(정주영 명예회장) 좌우로 김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앉았다. 만찬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우리 형제들은 50여년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을 찾은 뒤였고 김 위원장 등 북측 관계자들도 만족해 하는 우리 모습에 덩달아 즐거워했다. 그날 만찬에 이어진 공연은 더욱 흥겨웠다. 남녀 혼성밴드의 음악에 맞춘 평양예술단의 노래와 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민배우 염청은 공연 마지막 부분에 형님을 불러냈다. 형님도 노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무대위로 올라가 "아침 이슬"과 "고향의 봄"을 불렀다. 우리 일행도 모두 불려 올려졌다. 노래는 합창이 됐다. 역시 마지막 노래는 함께 부른 "우리의 소원"과 북측이 불러준 "다시 만납시다"였다. 이튿날인 22일. 이날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 날이다. 형님이 89년 방북후 오매불망 그려오던 금강산 개발 프로젝트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날이어서다. 물론 우리에게만 중요한 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분단사에도 작으나마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날이 아닐까.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서명식에는 아태평화위의 김용순 위원장, 송호경 부위원장과 이성대 대외경제위원장,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장 등 여러명이 참석했다. 서명식에 앞서 김 위원장은 우선 우리 일행과 회의 탁자에 마주앉아 김정일노동당 총비서의 공식 메시지를 전달했다. "9월달에 모든 일행을 다시 공식적으로 초청할 예정이니 그때 와서 꼭 다시만납시다. 금강산 개발은 현대와 우리(북한)이 둘이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진행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명은 우선 형님과 김 위원장간에 이뤄졌다. 금강산 관광과 개발에 대한 의정서에 두 사람이 서명하고 곧 이어 몽헌과 송호경이 연서했다. 금강산 관광을 위한 계약서는 아태평화위 강종훈서기장, 자동차조립공장 철근공장 등 나머지 사업은 민경협 정운업 회장이 우리 실무팀 대표인 몽헌과사인을 했다. 김 위원장은 형님에게 자신이 회고록을 쓰면 이번 계약에 대해 반드시 적어넣겠다고 했다. 그리고 형님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보다 앞에 넣겠다고 얘기했다. 그는 두마리 학이 소나무에서 비상하는 "보석화"와 은제화병 인삼정원액 인삼차를 김정일 총비서의 선물이라며 내놓았다. 현대그룹 임원들에게 한병씩 나눠주라고 백두산들쭉술 4백병과 함께. 이날 저녁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연회는 형님이 주최했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 경협을 논의한 북측의 모든 "일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형님은 이 자리에서 방북 7박8일간의 소감과 더불어 소망을 이야기했다. "하늘과 구름, 땅이 하나로 통하는 가깝고도 먼 고향. 그 고향에 오니 꿈만 같습니다. 너무도 정답고 따스한 가슴의 문을 열어주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번 협력사업은 화해와 협력의 토대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갈등을 털고 화해로, 분열을 버리고 통일로 가는 길을, 우리 함께 웃으며 걸어갑시다" 어찌 형님만의 소망일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통일로 가는 길에 금강산 관광이라는 초석을 놓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방북단은 판문점을 되넘어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