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가깝고도 먼나라 .. 시모조 마사오 <객원교수>

지금까지 한.일교류에 관심이 높았던 나는 될수있는한 여러 모임에 참가해 의식적으로 한.일교류의 장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때마다 모임에서는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문구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때문에 "한.일관계를 가깝고도 가까운 관계로 만들자"는 내빈들의 축사도들린다. 그리고 내빈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오고 박수가 터져 나오면 이번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한.일 두나라 사람들이 가슴에 단 명찰로 상대를확인하면서 상대의 표정에서 동의의 미소를 찾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표현은 한.일간에만 통하는 사교사령인 것이다. 이말의 의미는 한.일 교류를 끝내고 귀가를 서두를때 깨닫게 된다. 상냥한 얼굴표정 밑에 감춰진 자기기만을 꾸짖는 감정을 스스로 느끼기때문이다. 이는 한.일관계는 어렵다고 하는 전제를 세워놓고서 무엇인가 한.일을 "가깝고도 가까운"관계로 만들고 싶다며 기분상으로만 무리를 한 결과다. 지금까지의 한.일교류의 대부분이 기대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것은교류를 하면 상호이해 쉽겠거니 하고 안이하게 생각해 그 뜻을 깊게 숙고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년의 한국사람들에게 물으면 옛날에는 가깝고도 먼나라라는 표현이 없었던것 같다. 이것은 전후 한일 국교정상화교섭이후의 일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우리들은 어떻게 다른지도 알지못하면서 일본과 한국을 막연히가깝고도 가깝게 만들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는 IMF시대라고 말하는 패러다임이 있다. 걱정이 되는 것은 거기에도 가깝고도 먼 나라식의 발상이 있지않은가 하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기전에 이미 IMF시대라는 테두리에서 출발하고있어 문제해결을 위한 귀납적사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IMF관리체제하에 들어섰을 무렵 한국에서는 과거 한.일합방이 5적의 과실에서 비롯된 일을 예로 들면서 현대의 5적이 화제가 됐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현대의 5적을 지탄하기보다도 한국에서는 "왜 똑같은 역사의 과오가 반복되는 것일까"하는 점이다. 먼저 그 역사적 현실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말한 연역적 발상에 그치고 있으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는 꼴밖에 되지않는다. 연역에서 귀납으로, 한국은 지금 발상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때이다. 시모조 마사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