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9일자) 아직도 미덥지않은 고속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부의 경부고속철도사업 계획안이 또다시 수정됐다. 지난 90년 첫 계획안이 발표된뒤 세번째로 대수술을 받은 이 조정안은 1단계로 "서울~대구 고속철도, 대구~부산 기존선 전철화"의 형태로 건설하고 경기가 호전되면 2단계로 대구~부산 노선에도 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것이 골자다. IMF체제 아래서 18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서울~부산 전구간에서 한꺼번에 공사를 벌인다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적 판단이 이같은 단계적 추진 결정의 배경이 됐으리라 짐작된다. 경부고속철사업은 처음 발상부터 경제논리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시비가 그치지 않은데다 그동안 잦은 설계변경, 노선.역사 위치 수정, 부실시공 등이 겹쳐 전면 백지화 주장까지 제기되는 등 애물단지 공공사업의 상징처럼 돼왔다. 그러나 국내물류의 75%를 담당하는 경부축의 물자 수송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새로운 수송수단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 이미 2조8천억원이란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된 데다 노선 및 역사 설계와 시공상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대가도 치를 만큼 치렀다. 따라서 공사를 계속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일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봐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공사비를 줄이면서도 졸속.부실공사가 되지 않게 하느냐, 또 소요재원을 어떻게 차질없이 조달하느냐 하는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때문에 건설교통부의 조정안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하면서도 몇가지 주문을 곁들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더이상 부실공사의 시비가 일어서는 안된다. 사업비는 빠듯하고 개통시기는 단축된 까닭에 부실과 졸속의 가능성은 전보다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부실공사에 따르는 안전성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일단 부실시비에 휘말려 공기가 1년만 늦어져도 2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하니 졸속과 부실의 해악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 큰 현실적 관심사는 재원조달 문제이다. 고속철 1,2단계를 완공하려면 총 19조2천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하고 1단계 공사에만도 12조7천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정부는 총공사비의 45%는 국고지원과 재정융자 등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채권발행 해외차입 민자유치 등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지만 두가지 다 변수가 많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보다 확실하고도 치밀한 자금조달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고속철사업은 그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엄청난 낭비를 초래한 만큼 더이상의 시행착오는 용납될 수 없다. 더이상 정치적 이유나 지역이해 때문에 경제논리를 벗어나 갈팡질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무튼 수정계획에는 아직도 미덥지않은 구석이 많다. 정부가 어떤 최종결정을 내릴지 두고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