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국제금융이야기) (9) '실물경제적 환율이론'

강연때마다 자주 나오는 질문이 있어 소개한다. 원화의 환율이 어느 정도가 적정하냐는 것이다. 원화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이 늘어나서 좋기는 하지만 환율불안으로 외국자본이 이탈한다거나 혹은 수입가격이 올라가 인플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우려섞인 질문이다. 그러나 소위 "적정환율론"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어찌보면 금융자본이 횡행하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적정환율이라는 말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흔히 적정환율이 이러니저러니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한 나라 환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광포한 국제자본 이동현상을 간과한 채, 환율을 단순히 실물경제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실물경제적인 관점에서 환율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신고전파이론과구매력평가론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20세기초 금융경제의 비중이 극히 미미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만큼 철저히 실물경제의 논리에 입각, 환율을 설명하고 있다. 신고전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 나라가 무역흑자를 내면 외국돈의 공급이 늘어난 셈이므로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해 자국통화의 가치가 상승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무역수지는 균형을 찾게 된다". 구매력평가론은 양국간 물가의 차이를 고려했다는 점만 다를 뿐 철저히 신고전파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 나라의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그 나라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은 것이므로 수출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외국 돈의 공급을 늘림으로써 그 나라 통화의 가치를 상승시킴과 동시에 무역수지의 균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시장원리에 의한 자동균형은 간 곳이 없고 만성적 무역적자국인 미국과 흑자국 일본이 엄존하고 있다. 더욱이 달러화와 엔화의 가치는 신고전파이론과는 정반대로 각기 강세와 약세를 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고전파의 실물경제적 환율이론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전적으로 상실하고 있다. 기존 환율이론의 한계를 최초로 지적하고 나선 것은 경영평론가 피터드러커였다. 드러커는 외환시장의 변화에 주목했다. 오늘날 전세계 외환거래중 실물경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이고,나머지 98%는 투기성이 높은 순수 금융거래이다. 이처럼 외환시장이 투기장으로 바뀌어 버린 새로운 현실에서 환율의 변동을 실물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드러커를 가리켜 저널리스틱한 비전문가로 매도하고 있지만,그의 탁월한 현상인식 능력은 국제금융에서도 빛을 발했다. 새로운 현실을 현실로서 인정하고 탐구하는 그의 실천적 학문성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아직도 방법론적인 정치성에 매몰되어 치졸한 갑론을박만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자들에게 귀중한 사표가 아닐 수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