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가시방석 은행임원

"이제 은행임원이 되려는 사람은 재산을 미리 가족명의로 이전해 둬야 하는것 아니냐"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이 전 제일은행 경영진을 상대로 낸 4백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은행원이 내뱉은 말이다. 은행임원의 위상이 너무나 우습게 됐다는 자탄의 소리다. 사실이 그렇다. 요즘 은행임원은 사회적으로 죄인취급 당하고 있다. 주주와 고객으로부터 "내돈 물어내라"는 항변을 받기 일쑤다. 공공장소에서 슬그머니 은행배지를 떼는 은행임원도 있을 정도다. 정부는 아예 현 경영진으론 금융개혁을 이룰수 없다며 외국인을 영입하라고몰아세우고 있다. 옳은 지적이다. 현재의 은행부실화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은행임원이 져야 한다.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준 법원에 주주 고객 모두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은행부실화의 책임을 임원들에게만 돌리는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한보그룹에 대한 대출은 물론 거액부실여신이 발생한 이면엔 반드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이른바 "관치금융"과 "정치금융"이 바로 그것이다. 금융개혁의 목소리가 한창인 요즘. 과연 정부와 정치권은 은행경영진에 자율경영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지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관치금융이라는 굴레만 사라진다면 외국인보다 훨씬 출중한 개혁능력을 가진 사람이 국내은행에도 얼마든지 많다. 하영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