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한 '세계의 CEO'] (8) '인텔 앤드류 그로브 회장'

최고 경영자의 최대과제는 투자수익률의 극대화다. 투자 수익률을 증가시키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분모인 투자를 줄이거나 분자인 이익을 늘리는 것이다. 투자를 줄이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회사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위기탈출을 위한 임시방편으로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대량해고다. 추수전략(Harvest Strategy)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이 방법은 당장 위급한 상황에서 탈출하는데는 어느정도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켜 궁극적으로는 회사존립 이유중의 하나인사회공헌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최고경영자는 이익추구를 통한 이해관계자(Stakeholders) 및 사회이익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고경영자가 회사의 지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보장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특히 미래변화에 대한 예측력은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인텔은 지난 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세에 의해 설립되었다. 70년에 지금의 앤드루 그로브 회장이 입사했다. 인텔은 최초로 D램을 개발했다. 지난 86년 사업을 포기했지만 그동안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그이후 인텔은 기업의 핵심역량을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옮겼다. 그결과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5대 기업에 올라있다. 인텔을 이처럼 세계 최우량 기업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그로브 회장이다. 특히 그의 미래 변화에 대한 예측력은 인텔을 침몰 위기에서 건져내는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로브 회장은 그의 최근 저서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에서 미래의 변화에 대해 최고경영층이 얼마나 민감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업경쟁력의 변화를 결정짓는 6가지 요소를 소개했다. 경쟁정도, 소비자의 힘, 공급자의 힘, 진입장벽의 정도, 대체재의 존재여부, 그리고 보완재의 힘등이 그것이다. 이 6대 요소중 어느 한 요소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기업은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로브 회장은 이 점을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ection Point)이라고 규정했다. 전략적 변곡점에서 회사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런 변화를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더욱 강한 회사로 남을 것인가,아니면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될것인가 하는 두가지 길이다. 물론 그로브 회장은 전자의 경우다. 스스로가 이런 변곡점을 정확히 예측해 인텔을 더욱 가치있는 회사로 만든 것이다. 인텔이 D램 사업을 포기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핵심역량을 이전한게 그로브 회장의 첫번째 변곡점 예측 성공사례다. 인텔은 세계 최초로 D램 칩을 개발한 이래 10년 동안 25%이상의 자본 수익률을 올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 자본력이 풍부한 세계의 대기업들이 잇따라 D램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산업내 경쟁이 급격히 심화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공급업체의 증가는 소비자의 힘 Consumer bargaining power)을 증가시켜 주었다. 그결과 산업내 경쟁이 심화되고 80년대에 들어 인텔의 수익성은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결국 86년 D램 분야의 영업손실이 1억달러에 이르렀고 당기 순손실은 2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인텔의 직원 대부분은 회사의 모태사업인 D램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D램사업의 포기란 꿈도 꿀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로브 회장은 D램 사업의 미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D램 사업은 인텔의 핵심역량인 기술 집약적 시장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일본 D램 업체들이 게임의 규칙을 이미 기술에서 가격으로 바꿔놓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로브 회장이 D램사업 포기를 결정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회사 내부의 반대는 거셌다. 그러나 그는 회사 역량을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키로 결정했다. 그결과는 96년의 재무제표에 나타났다. 그해 인텔은 매출액 2백8억달러, 순익 52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5번째 가치있는 회사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그로브 회장이 전략적 변곡점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두번째 예는 지난 94년 펜티엄 칩 결함사건 때다. 당시 인텔은 최초로 초고속 프로세서인 펜티엄을 개발했다. 그러나 시판 초기에 연산오류가 있다는 결함이 발견됐다. 미국의 언론과 소비자들은 인텔에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급기야 IBM은 펜티엄 칩이 장착된 자사 제품의 판매를 중단한다는 발표를 하게 됐다. 이런 결정은 인텔에 몹시 당황스런 일이었다. 펜티엄의 결함은 사실 소비자에게까지 직접적 영향을 줄 사안이 아니었다. 고도의 기술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컴퓨터 기술자와 해결할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펜티엄 결함사건은 일반 소비자들사이에서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로브 회장은 이때 5억달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불량 펜티엄 프로세서의 교환을 추진했다. 인텔의 고객은 컴퓨터 제조업체뿐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 집단이 인텔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로브 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컴퓨터 업체가 아닌 최종 소비자 만족에 더욱 주력했다. 소비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펜티엄 칩을 교환해주기로 결정하고 수정된 칩을 개발하는 데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 그 결과 인텔은 5억달러 가까운 손실을 봤지만 최대의 고비는 넘겼다. 오히려 인텔이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선두주자임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시간 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인 프라할라드 박사는 미국의 최고경영층을 대상으로 "미래의 변화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가"를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 최고경영층은 전체 업무시간중 평균 3%이하를 미래예측에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인별 랭킹을 만든다면 그로브 회장은 아마 단연 1위였을 것이다. 그의 미래 예측력은 앞으로도 인텔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한 축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