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비오는 날의 잔치

"오늘은 잔칫날이다"(이관우 한일은행장) "정부의 압력은 전혀 없었다"(배찬병 상업은행장) 31일 오전10시 은행회관 회의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발표회장. 두 은행장은 시종 "합병은 생존을 위한 자발적인 결정이었으며 오늘은 즐거운 잔칫날이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당국의 압력이나 종용은 전혀 없었다고 애써 강조했다. 같은 시간. 기자회견장에 모인 두 은행 임직원들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오히려 씁쓸함과 불안감뿐.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의 흥분이라곤 전혀 없었다. 물론 오랫동안 몸담아온 은행이 간판을 내린다는데 즐거워할 은행원은 없을 것이다. 대량감원을 앞둔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그러나 어디 그 이유뿐일까. 한 합병실무 관계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단순한 중매쟁이인줄 알았더니 주례까지 자청하더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두 은행장의 "자발적 합병발표"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금감위가 어르기도 하고 뺨도 때린 결과라는 것을 금감위만 빼놓고 다 안다. 문제는 합병의 성공여부다. 두 은행의 합병발표로 외자유치는 사실상 물건너 갔다. 정부의 지원이 미미하면 합병은행은 "슈퍼부실은행"으로 전락할 공산이크다. 과연 그 때도 두 은행은 "자발적인 결정 결과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까.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여름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하영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