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경영인] (6) '정리해고'..해고통보 정말 괴롭다

전문건설업체인 J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H전무. 그는 요즘 참담한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한다. 회사에 나와도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영업은 중단되다시피했고 금융권은 매몰차게 여신을 회수하고 있다.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H전무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직장을 잃게 되는 직원들이다. 최근 두달새 2백여명이 직장을 떠났다. 전체직원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다.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그들에게 H전무가 해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다. H전무는 지난 3월 고민끝에 1백3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키로 결정했다. 건설경기가 워낙 위축돼 임금삭감 경비절감 등의 노력만으로 회사를 정상화시킬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린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러나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노조는 정리해고를 추진하는 사측과 단체협상을 할수 없다며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노사간 갈등은 심화됐다. H전무는 "이제는 공도동망할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뿌리칠수 없게 됐다. 최근들어 경영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직원들의 해고문제다. 판매난으로 가동률이 형편없이 떨어진 회사를 꾸려가기 위해선 어차피 잉여인력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허용된 정리해고가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노조의 거센 반발이 뒤따른다. 직원생계를 빼앗는다는 자괴감도 경영자들을 괴롭힌다. 정리해고를 했다고 회사가 잘될 것이란 확신조차 없다. 모든게 혼란스럽고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다. 경영자 입장에서 정리해고는 노조를 설득하지 못하면 자칫 역효과를 가져올수 있는 미묘한 사안이다. 실제로 한국전기초자는 노조가 회사측에 정리해고불가입장을 분명히 해줄 것을 요구하며 지난해 77일동안 장기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으로 매년 흑자를 내던 기업이 지난해 5백70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는등 경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 현대자동차 경영진도 현재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장가동률이 40%대로 떨어져 다섯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한 후 정리해고를 통보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노사간 대치상태다. 현대차 노사간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경기가 더 침체될 수밖에 없다. 노동부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7월 25일까지 경영상 해고계획을 신고한 업체는 모두 62개사로 해고대상인원은 총 7천3백여명이다. 그러나 신고업체중 정리해고를 실시한 곳은 세진컴퓨터랜드(서울) 삼영케블(경기도 안산) 등 23개사 정도에 불과하다. 10개사는 해고계획을 철회했으며 13개사는 위로금지급 등으로 사직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정리해고가 어려운 것이다. 나머지 16개사는 현재 노사협의를 진행중이다. 경기전망에 비춰볼때 앞으로 정리해고를 실시하는 기업은 늘수밖에 없다. 주요 그룹들도 조심스럽게 정리해고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노조와 한차례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경영자들은 이 문제로 골치를 앓을게뻔하다. 자신감을 잃은 경영자 입장에서 정리해고문제로 노조와 옥신각신하는게 더더욱 싫다. 최근 노조의 양해를 얻어 20명을 정리해고한 S사의 C사장은 "정리해고 자체도 어렵지만 남아 있는 종업원의 사기를 높이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IMF(국제통화기금)사태이후 "자리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할 수 있는 경영자들은 좀체 찾아볼수 없게 됐다. 그래서 노사간 불신이 더 커지고 경영자들은 이 골을 메워야 하는 또다른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