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노트] (금리 이야기) (2) '배짓의 고금리 처방'

작년말 IMF는 한국에 5백70억달러규모의 자금지원을 약속하면서 한국의 향후거시경제정책에 대한 몇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그 중의 하나가 고금리정책이다. 당시 외국자본의 이탈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한국은 심각한 외환부족상태에 빠졌는데 이들 이탈외국자본을 다시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고금리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같은 심각한 외화유출을 저지하기 위한 고금리정책은 선진국에서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정책처방 중 하나이다. 19세기 금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영국에서 금의 해외유출이 급속히 진행되자 당시 화폐로 사용되던 금의 부족사태가 심각해졌다. 급기야 상당수 은행들이 고객의 예금인출요구에 응할 수 없게 되었고 은행들은 파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편집장이었던 월터 배짓(Walter Bagehot)은 이러한 사태의 긴급처방으로 고금리정책을 제안했다. 즉 고금리는 국내의 예금이 은행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억지하며 해외로부터의 금 유입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당시의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처방으로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와함께 그는 금융위기에 직면해 중앙은행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하는 행동준칙도 함께 제시했다. 배짓은 이러한 사태의 대응책으로 중앙은행이 다음의 두가지 원칙을 공표하고 이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고수할 것을 제안했다. 첫째, 자금이 꼭 필요한 곳에만 대출될 수 있도록 매우 높은 금리가 적용돼야 한다. 둘째, 우량한 담보가 제공되는 경우 은행들은 앞서의 높은 이자율에 차입자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언제든지 대출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의 목적은 사람들의 놀람을 진정시킴으로써 이들이 더 이상 은행에서 자신들의 예금을 인출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지난 연말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의 고갈로 외환에 대한 지급불능상태에 직면하게 되자 IMF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한국에 제공하기로 공표하고 국내의 금리를 대폭 인상시킬 것을 요구한 일은 바로 배짓의 고금리처방을 한국경제에 적용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외국투자자들의 외화유출이 멈추었고 급박한 외환위기 상태를 넘길 수 있었다. IMF가 한국은행들을 대신해 외국투자자들의 놀람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외국투자자들은 IMF의 자금공급의사와 능력을 신뢰했고 우량한 담보 대신 한국정부가 지급보증하는 고금리에 한국에 대한 자금제공을 재개하였다. 배짓의 고금리처방은 효과를 발휘했고 한국은 외채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배짓의 이러한 고금리처방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조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판단되면 고금리처방은 즉시 수정되어야한다. 이같이 비정상적인 고금리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IMF와 한국정부는 금리수준을 작년말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급박했던 외환위기를 한고비 넘긴 지금 왜 이같은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는가를 깊이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배짓이 제시한 일시적 고금리처방만으로 치유될 문제가 아닌 경제구조 자체의 결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홍완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