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려되는 경제수위..김병주 <서강대교수/경제학>

며칠새 기상특보가 연발되는 가운데 엄청난 재난과 사고가 줄을 이었다. 호우가 멈칫하는 사이 매미소리가 간단없이 들린다. 매미소리라면 뜨거운 땡볕속에 들려야 제격일텐데 빗속에서도 우는 매미는 간절한 사연이 있는가 보다. 그것이 무엇일까. 땅속 애벌레 생활 15년끝에 겨우 두어주 동안만 성충으로 땅위에 사는 목숨이기에 짝짓기가 그토록 간절해서일까. 대자연의 변화무쌍함속에서 원시인간은 배를 채울 한끼 먹이, 한밤을 지낼 잠자리에 고민하며 어려운 삶을 꾸려왔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점차 자연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된 반면 그가 만든 각종 제도의 틀에 스스로 구속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다. 특히 경제생활이 그러했다. 오늘날 한 가정, 한 도시, 한 국가만으로는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수많은 자원과 상품들이 일정한 관행속에서 교류됨으로써 현대의 경제생활은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나라 경제동향에 항상 촉각을 세워야 한다. 요즘 주변국가 경제가 먹구름에 가려있다. 지난 11일 인도네시아가 3건의 국가채무에 대해 이자는 지불하되 원금상환을불이행했다. 경제조정장관은 국제 금융기관들과 이미 합의한 공공채무 재조정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외국기관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그곳에 40여억달러의 채권(그중 상당부분은 금융기관 채권)을 가진 한국으로서는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오부치 내각 출범이후 일본의 금융개혁의지를 불신하는 국제금융시장에서 11일 엔화가치는 달러당 1백47엔대로 곤두박질치고 도쿄 증시의 닛케이지수가전날보다 2백19.43엔 떨어져 1주간 5.9%나 폭락하는 약세행진을 계속했다. 중국인민은행은 위안(원)화 평가절하를 부인하고 외환시장 개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지만 당면한 대홍수와 예상되는 농업생산 대량감소에 비추어 얼마나버틸지 불확실하다. 홍콩 증시도 2백54포인트 빠져 항셍지수가 3.6% 하락을 기록했다. 홍콩달러의 평가 유지가 투기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래저래 동아시아 전역의 통화위기가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보인다. 얼마전 가용외환보유고가 사상 최대라는 정부 보도로 쉽사리 잠재울 수 있는 형국이 아닐 수도 있다. 남달리 호황을 누리는 미국의 경제사정도 그리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기반과 증시국면이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주식가격은 기초 경제상황을 반영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증시에는 경제논리가 물구나무서고 있다. 주식시장의 강세가 미국경제의 추진력이 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 소비가 모두 증시호황의 힘을 빌리고 있다. 호황 증시가 엄청난 자본이득을 부풀렸다. 94년이래 자산가격 상승으로 가계부문은 12조달러 규모의 부의 증가를 얻었다. 그때문에 신나게 돈 쓰는 잔치가 경제를 이끌었다. 최근 총 국내지출은 거의 연율 8%의 오름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가계저축은 가처분소득의 0.6%로 사상최저를 기록했다. 거품경제가 아닐까. 이같은 잔치 분위기는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설때 대참극으로 급변할 공산이 크다. 아찔한 느낌이 드는 대목은 증시인구 때문이다. 1929년 증시 대폭락 직전 고작 3%였던 증시인구 비율이 87년 증시파동전에는25%, 최근에는 거의 50%에 이르고 있다. 언젠가 경제논리가 제자리에 반듯이 설 경우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 미칠 높은 파고가 우려된다. 요즘 아침저녁 뉴스시간마다 한강 수위를 고정 메뉴로 듣게된다. 반면 국내외 경제 수위를 알리는 보도는 간헐적이고 단편적이다. 오히려 호우속인지 뙤약볕인지를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소리만 요란하다. 여의도 국회주변 정치게임이 가장 소란하다. IMF상황이 정부관료들에게 오히려 관치경제의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형국이다. 노사가 충돌하는 산업현장에서도 집단 이기심이 기승을 부리고 국익은 축출되고 있다. 기업인들도 경제파국의 책임의식없이 초대마불사를 노리고 있다. 가계들도 벌써 충격을 벗어나 씀씀이 버릇을 되살리고 있다. 매미소리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니 차라리 매미였으면 좋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