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작년말 외환위기 어느새 잊었는가 .. 박영균

박영균 1년전 동아시아를 휩쓸던 외환위기가 다시 유령처럼 출현했다. 무대가 전세계로 확대됐다는게 달라진 점이다. 러시아는 사실상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그 여파는 동유럽으로, 남미로 또다시 아시아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지금부터 위기상황이 본격화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9월부터는 은행 대기업 공기업에서 수천,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돼있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는가에 따라 우리의 앞날은 달라질수 밖에 없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개혁을 바라고 있다.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위기상황을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와 공기업,금융기관 그리고 기업의 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역대 어느 정권치고 개혁을 들고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부패와 무능의 표본으로 사후 평가를 받는 정부조차도 초창기엔 개혁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바로전 김영삼 정부의 개혁이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개혁은 혁명보다 성공하기 어렵다고 한다. 개혁이 실패하는데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스스로의 개혁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정치권력 스스로의 개혁은 예외로 한다. 반대파나 정적에게만 엄격한 룰을 적용한다. 이를테면 내부의 적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둘째 관료개혁에 실패한다. 초기에는 정부조직개편 공공부문개혁에 열을 올리다가 점차 관료의 논리에포획된다. 그러다보니 다른 개혁작업도 흐지부지된다. 처음에는 혁명군처럼 당당하던 장관도 얼마 지나지않아 직업관료들의 논리에 휘말리고 만다. 세째 자화자찬에 스스로 속고 만다. 자체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나름대로 화려하기만한 근거도 제시한다. 남의 평가는 잘못된 것으로 몰아붙인다. 외환위기 직전에 외국의 혹평을 애써 부인했던 것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이 와중에서 위기의식은 어느덧 사라진다. 대신 막연한 장미빛 환상이 자리잡는다. 전 국민이 마치 무슨 마술이라도 걸린 것 같다. 여기엔 정치권의 움직임도 한몫한다. 고통을 감내할 것을 호소하기 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만 양산한다. 바로 1년전이 그랬다. 스스로의 개혁에 실패한 결과로 "가신"과 "실세"들의 전횡이 극에 달했다. 서슬퍼렇던 개혁의지는 관료들의 보신논리앞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외환위기가 문턱에 와있는데도 "펀더멘털(경제기초)은 괜찮다"는 수사로 인기에 영합하는데 급급했다. 지금 곳곳에선 위기의식을 상실한 것 같은 징후가 감지된다. 정부의 자기개혁모습은 아직 찾을수 없다. 정치권은 현대자동차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개혁의 원칙"에 위반되는 인기영합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금융및 기업구조조정을 지휘하는 금융감독위원회조차 "할만큼 했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지금은 정말로 위기의 시대다. 나라 안팎이 모두 그렇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남미국가들이 다시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채권금리는 껑충 뛰고 있다. 시한폭탄과 같은 노사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모두가 1년전과 비슷한 모습이다. 까맣게 잊어도 좋은건 위기가 아니라 환상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