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학] (뉴테크) '펄프없이 종이 만든다'..'장섬유기술'

"펄프없이 종이를 만든다?" 믿기지 않는 얘기가 조만간 현실화될 전망이다. 호주의 한 사업가가 실제 펄프를 사용하지 않고도 바나나 껍질 등으로 종이를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과 공정을 개발해 낸것이다. 현대 제지술에 혁명을 일으킬 공법으로 평가받는 이 기술은 "장섬유기술(LFT.Long Fibre Technology)"로 이름붙여졌다. 어떤 방식이기에 펄프없는 종이생산이 가능할까. 이 기술을 발명한 래미 에이저씨는 "고대에 사용됐던 각 지역의 제지술을 현대에 맞게 결합한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따뜻한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나무 등 식물을 적당한 크기와 폭으로 잘라 그대로 사용했다. 파피루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반면 중국에서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방식으로 종이를 만들었다. 식물을 두들겨 펄프처럼 만든 후 넓게 펴말려 쓴 것이다. 그러나 중국식 기술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펄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에이저씨는 목재는 값싸고 풍부한 자원이라는 점에서 종이원료로 널리 쓰이지만 실은 그리 좋은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대적인 제지공정에서 쓰이는 나무 절단기술과 식물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섞는 태평양 섬사람들의 종이제조 기술, 고대 이집트인들의 파피루스 처리기술을 결합한 LFT방식을 사용하면 목재를 사용한 것보다 훨씬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LFT방식을 이용해 만든 종이나 마분지는 바나나 나무 등 열대작물을 그대로 주원료로 쓰기 때문에 매우 질기다. 또 제조공정에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도 줄일 수 있고 환경보호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작물의 수확에서부터 제지까지 습도 온도 등을 최적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도 에이저씨는 이 기술을 이용해 종이를 대량 생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에이저씨는 올초 이미 "파피루스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제지회사를 설립,바나나 부산물로부터 종이를 만드는 공장을 건설중이다. 99년 중반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해 연말께는 시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연간 생산량은 A4 용지로 59만장에 해당한다. 에이저씨는 "기존 제지공장이 거대한 단위설비를 필요로 하는데 비해 새 공장은 모듈화된 생산방식을 사용, 제조원가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종이품질 또한 투명지에서부터 마분지에 이르기까지 기존 제품에 비해뛰어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