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신 보험문화' 싹이 튼다 .. 후발/합작생보 앞장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승현(30)대리는 최근 자진해서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주위에선 가입한 회사가 후발생보사라고 말리기도 했지만 정부의 생보사구조조정도 끝난 마당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씨의 보험 가입에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었다. 지난 광복절 연휴 경기도 파주에 있는 처가집을 갔다. 예년같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지만 올 여름 처가행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바쁜 회사일로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미안감도 없지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자신보다 모 보험사 직원들이 먼저 와서 힘든 일을 자청해 하고 있지 않은가. 늑장 수재의연금보다 생수 라면을 들고와 함께 일을 하는 자원봉사가 이재민에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이씨는 그들과의 인연을 못내 잊지 못하고 궁리하던 차에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을 들기로 작정했다. 그 회사 본사에 전화를 걸어 용건을 말한 결과 텔레마케터로 연결이 됐다. 간단한 상담을 거쳐 경제적 부담도 별로 없으면서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보장성보험을 추천해 주는 것이 아닌가. 선뜻 가입하겠다고 밝힌 그에게 1주일후 청약서와 약관이 들어있는 봉투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보험아줌마"와 "보험적금"만을 연상해온 생명보험영업의 변화상이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미국 영국 등 보험선진국에서나 있을법한 보험가입패턴이 한국에서도 이미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신 보험문화가 후발 생명보험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민과 함께 하는 생활보장회사로서의 기능을 찾아가며 거듭나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금융감독위원회가 국제 BYC 태양 고려 등 4개 부실생보사에대해 영업정지 조치및 계약이전 명령을 취한 뒤 후발 생보사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당국의 보험산업 구조조정 조치를 위기가 아닌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후발사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 후발 생보사는 대부분 80년대말 출범했다. 벌써 10년안팎의 역사를 지닌 중견보험사로 성장한 셈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당시 국내 생보시장은 한단계 더 성숙할 수 있었다. 요즘 벌어지는 새로운 양상은 이땅의 생보사들을 진정한 생활보장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보험을 중심으로한 종합금융서비스가 바로 이들 생보사의 최종 목표인 셈이다. 출범당시 이들 후발사는 "확대 제일주의"를 모토로한 과거답습형 전략을 구사, 전체 경쟁구도를 바꾸는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한게 사실이다. 오히려 과당경쟁을 부추겨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등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들어선 모든 게 바뀌고 있다. 전화나 DM(Direct Mail) 등 통신판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판매채널 다양화 전략이다. 조직축소와 감원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최대 숙제인 저비용 고효율의 체질개선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상품개발에 대한 시각도 1백80도 변경, 장기불황시대에 걸맞은 보장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같은 신 문화를 열어가는 주인공은 대신 신한 SK 태평양 국민 한덕 등 1차 관문인 당국의 경영평가를 무사히 통과한 후발사와 동양 동부 삼신올스테이트 등 앞서가는 합작생보사들이다. 이들에 있어 앞으로 2~3년은 생사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시기가 될 것이다. 기득권을 쥔 삼성 교보 대한 제일 흥국 등 선발 생보사와의 힘겨운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다. 손해보험사들의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게다가 대외개방과 함께 밀려온 외국계 보험사는 막강한 자금력과 선진기법을 앞세워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발생보사 중심의 신 보험문화는 국내 생보산업의 선진화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동아 국민 등 일부 생보사가 추진중인 외국자본 유치계획이 결실을 맺게 되면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4개 생보사 퇴출은 고객에게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객의 욕구를 맞추지 못하는 보험사는 무대밖으로 물러선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했다. 이같은 여건에서 국내 생보산업은 기존 신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백화점식 보험사와 특정분야에 강점을 지닌 전문점스타일의 틈새형 보험사로 대별되는 새 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생명보험사 특성상 계약자 1백만명만 확보하면 어떤 여건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유성근 신한생명 사장)는 경영철학을 실천하는 보험사가 나오는가 하면 연금보험 암보험 등에선 선두주자와 어깨를 겨루는 부띠끄형 보험사가 등장한다는 얘기다. 후 2~5년이내에 한국 보험산업은 몇몇 대형사와 틈새형 보험사로 양분될 것"이라고 매킨지 시멘스 이사(유럽보험부문 담당)는 전망하고 있다. 그는 특히 앞으로 보험시장은 외형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수익을 거두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며 한국 보험시장에도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누가 이같은 대세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자세와 준비를 갖추느냐에 따라 성장의 기회를 잡게 된다는 얘기다. 살아남을 보험사만이 한국형 신 보험문화의 주역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