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장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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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화장을 했다. 일반적으로 서유럽의 켈트인은 토장을 하고 튜튼인은 화장을 한 것으로 전한다. BC 1000년께 그리스는 토장과 함께 화장이 병행됐다는 기록도 있다. 그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부할사상"에 따라 화장풍습은 사라졌다. 동양에는 불교의 장속인 화장이 인도에서 도입됐다. 우리나라에도 불교가 전래돼 문화적 주축을 이뤘던 삼국시대에는 화장이 승려들 사이에서 뿐만아니라 왕과 귀족 및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행해졌다. 신라의 문무왕은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하고 뼈를 동해에 뿌렸다. 통일신라의 효성왕 선덕왕 진성여왕 효공왕 신덕왕 경명왕도 화장을 했다. 승려들은 화장을 한뒤 사리를 부도에 매장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특이한 예도 있다. 자장은 화장해 유골을 석굴에 안치했다. 유학자였던 설총은 아버지 원효를 화장하고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원효의 모습대로 빚은뒤 분황사에 봉안했다. 유교의 상례가 수용돼 있던 삼국초부터 고려말까지 매장 화장 전통적 장례풍습이 혼재했던 것이 우리 장속이다. 그러나 고려 공양왕때 정몽주가 "주자가례를 들여오면서 화장이 금지됐다. 유교가 뿌리를 내린 조선시대에는 무덤을 유택으로까지 중시하는 풍속이 굳어졌다. 지금은 2천만기의 분묘면적이 전국토의 1%에 육박하고 있다. 묘지는 매년 늘어나 전국토가 묘지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화장률은 고작 25%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 63년 화장이 교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매장을 고집해오던 천주교 사제들도 지난해 "화장유서"를 써 사후 화장운동에 앞장섰다. 엊그제 장례를 치른 SK그룹의 최종현 회장은 부인의 유해와 함께 화장하고 화장장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겨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상풍하속"이란 말이 있다. 지도자급 사람들이 솔선수범할 때 그것이 민간에 전해져 "풍속"이 된다는 말이다. 시대에 따른 풍속의 변천은 필연적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