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예고했던 '극한상황'

"심상치 않다" 지난 14일밤 9개 은행장들과 노사협상을 벌이던 한 노조간부가 내뱉은 말이다. 은행장들이 도통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노조도 바라지 않는 "극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이 말이 씨가 됐을까. "극한 상황"이 마침내 발생했다. 정부는 경찰병력을 투입, 추원서 금융노련위원장 등 노조간부 47명을 연행했다. 그리고 은행들은 연내 40%감원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제출했다. 이같은 상황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다름아닌 노조다. 노조는 은행장들이 40%감원방침을 누그러뜨리지 않자 물리력을 행사했다. 15일 오전까지 은행장들을 회의장에 사실상 감금해 버렸다. 이것만을 놓고보면 정부가 경찰을 투입한건 당연하다. 금융구조조정이 하루도 늦출수 없는 국가의 대업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발짝만 물러나서 생각하면 정부도 한심한 아마추어다. 말이 40%감원이지, 2명중 1명은 은행을 그만두어야 한다. 비단 노조가 아니라도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흥분할건 벌써 예상된 일이다. 더욱이 정부는 40%감원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1인당 생산성을 선진은행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말을 바꿨다. 말만 다르지 40% 감원방침은 똑같다. 이렇게 보면 정부는 "울고싶은 아이의 뺨을 때린 꼴"이 됐다. 무심결에 뺨을 때린 대가가 얼마나 클지 벌써부터 우려되는 순간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