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이탈리아 경쟁력 비결 : '전문화/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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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아시아의 밀라노로-"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섬유산업 육성계획의 모토다. 섬유중심도시 대구를 세계 최고의 패션도시 밀라노로 변모시키겠다는야심찬 계획이다. 물론 여기서 "밀라노"란 고부가가치 섬유산업을 상징하는 단어다. 한국의 섬유산업을 한단계 고도화시키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대구지역 섬유산업 지원방안의 초점은 소프트웨어 측면에 맞춰져 있다. 신제품 개발센터 건립, 염색디자인 실용화 센터, 패션센터및 정보실,섬유정보지원센터 등은 모두 중소 섬유업체들의 기술력, 제품기획력을 지원하기 위해 계획된 시설들이다. 이를통해 업체들의 기술및 제품기획력을 향상시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지원하겠다는 얘기다. 화섬업계에 4백억원규모의 신소재 개발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계획을 통해 오는 2007년에는 수출 3백억달러, 시장점유율 9%의 세계3대 섬유대국을 만들겠다는게 정부의 계획이다. 외형뿐아니라 신제품 개발, 기술, 품질, 기획및 정보력 등 경쟁력에서도이탈리아의 95%수준까지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섬유경쟁력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북이탈리아 섬유기업들의 운영현황과 한때 침몰의 위기에 있었던 최대의 니트산지 카로비 지역 회생스토리를 통해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성공요인을분석해본다. 대구 섬유산업의 모델로 떠오른 이탈리아 밀라노. 이곳은 두말할것 없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다. 이탈리아가 극심한 정치부패, 활개치는 마피아, 남북간 분열속에서도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을 유지하는데 섬유산업은 커다란 몫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섬유 의류 피혁제품의 수출은 기계산업에 이어 두번째다. 섬유수출은 2백80억달러규모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질적인 면에서는 단연 세계 1위다. 이탈리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평균 1만9천6백달러. 그러나 섬유산지가 모여있는 북이탈리아의 평균 소득은 2만2천달러를 훨씬 넘는다. 그만큼 섬유산업의 경쟁력은 이탈리아 경제의 엔진이라는 얘기다. 이탈리아 섬유경쟁력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수많은 중소기업들로 이뤄진 분업네트워크, 둘째 철저한 장인정신,셋째 신중한 경영이다. 네트워크 시스템 =이탈리아는 중소기업의 나라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긴밀히 협조해가면서 최종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러다보니 유연하다. 대기업의 경직성은 찾아볼수 없다. 섬유산업도 마찬가지다. 공정별로 최고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모여 최우수 패션상품을 만들어내는것이다. 이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게 오거나이저(organizer)기업이다. 말그대로 네트워크를 엮어주는 기업이다. 제품을 기획하고, 공정별로 가장 적합한 기업을 찾아 하청을 주면서 상품제조를 총지휘하는 두뇌기업인 셈이다. 세계 최대의 견직물 산지 코모지구. 랏티사는 이 지역 최대의 오거나이저 기업이다. 종업원은 약 1천2백명. 프랑스 에르메스, 이탈리아 구치 등 유명브랜드의 스카프나 여성복,넥타이들이 바로 랏티사의 손에서 기획되고 생산된다. 랏티사는 스카프의 봉제에 에로에사, 넥타이 봉제에 엣사사, 프린트에 카로리사 등 공정별로 여러 기업들에 하청을 준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1위를 자부하는 장인기업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관계가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랏티사는 이들중 품질이 떨어지거나 원가가 높은 기업과는 당장 거래를 중단한다. 최첨단 기술,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가진 기업과 거래하지 않으면 랏티사도 세계 최고급품을 만들어 낼수 없기 때문이다. 공정별 전문메이커들도 해당분야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키우지 않으면 언제 거래가 중단될지 모른다. 이런 긴장관계가 기업을 전문화와 기술혁신으로 내모는 채찍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가운데 프린트 공정을 맡고 있는 카로리사를 보자. 이회사는 종업원 50명에 매출 80억리라에도 못미치는 소기업이다. 그러나 매출경상이익률은 무려 10%. 이 지역 1백20여개 견직물 프린트업체중 최우량을 자랑한다. 이회사는 작지만 신기술 개발에서는 어느 대기업 못지않은 과감한 투자를 했다. 25년전 사진제판이 첫 실용화되자 곧 이를 받아들였다. 15년전 한 이스라엘 기업이 디자인을 색분해해서 형을 제작하는 CAD시스템을개발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사들인 것도 이 기업이었다. 이회사로선 연간 매출의 3분의1을 투자해야하는 대형 설비투자였다. 카로리사는 투자부담을 줄이기 위해 라이벌 기업과 협의해 3사 공동으로 이 기계를 도입했다. 그후에도 워크스테이션이나 PC를 이용한 설계시스템이 개발될때마다 앞장서서 새 기술을 받아들였다. 장인정신 ="품질의 고급화". 북이탈리아 기업 경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성공비결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비결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인들이 말하는 "품질"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과 다르다. 정밀하다거나 내구성이 강하다는식의 품질이 아니다. 생활의 풍요로움, 즐거움이 품질을 따지는 척도다. 생활을 풍요롭고 즐겁게 해주는 제품.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품질이다. 대량생산체제에 기초한 미국식이나 일본식 품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소량다품종이 주류를 이루는 21세기의 품질개념 역시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이탈리아식 품질개념은 타고난 장인정신에 기초해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생활 자체가 예술이다. 어디서나 예술품을 보고, 장인의 기질을 키울만한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는 얘기다. 코모지구의 견직물 오거나이저중 하나인 테스트사는 디자이너 10명을 두고 있다. 이들은 대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밀라노의 디자인 학교를 간다. 밀라노에는 수십개의 디자인 학교가 있다. 코모 거리에도 로마시대나 르네상스기의 예술품이 거리의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성당에만 가도 국보급 예술품이 있다. 디자이너의 싹을 키우는데 절호의 환경인 셈이다. 보수적인 경영 =이탈리아의 어려운 경제환경도 섬유업계의 체력을 단련시킨 요인이다. 이탈리아는 사회주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 고용한 직원을 해고하기 어렵다. 기업의 연금부담도 크다. 은행 대출금리도 10%대를 오르내린다. 세부담도 엄청나다. 이렇다보니 신규고용이나 설비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유연한 생산시스템, 타고난 장인정신, 규제를 체력강화의 기회로 전환한 신중한 경영. 이 세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오늘날 세계 최첨단 패션국가 이탈리아를 만들어 낸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