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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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제위기로 실업이 빠르게 늘어나자 정부는 실업자들을 위한 조치들을 여러가지 내놓았다. 그런 사회보장 조치들에 드는 비용도 물론 무척 크다. 안타깝게도 그런 조치들은 모두가 대증요법적이고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형평과 효율에서 문제들을 안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들이 이번에 실직한 사람들을 주로 돕는 조치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전에 실직했거나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은 처지가 훨씬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게다가 혜택엔 직업 소득과 연계된 부분이 커서 높은 봉급을 받았던 사람들일수록 혜택을 많이 받는다. 그런 사정을 인식하고서 국민회의는 사회안전망을 새로 마련해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한 빠른 대응은 고무적이지만 국민회의의 "실업대책백서"에 나온 방안들은 사회안전망으로선 너무 작다. 그나마 잘게 나뉘어져 효과나 효율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생활보호대상자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수혜자들이 일할 의욕을 잃게 되는 의욕 저상(disincentive)현상을 불러올 것이다. 선정 기준이 월소득 20만원대이므로 의욕 저상이 당장 두드러지지야 않겠지만 앞으로 안전망이 확충되어가면 의욕 저상은 점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큰 자원을 쓸 수 있는 집권당이 보다 포괄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적잖이 아쉽다. 경제학의 성과를 반영해 사회보장 제도들이 안게 마련인 문제들을 최소화한 방안이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모습으로 이미 존재하므로 그런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음소득세는 여러가지 모습들을 하고 있으나 기본적인 생각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는 단일 체계에 따라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제도 아래에선 모두가 소득세를 낸다. 소득이 한푼 없는 가정까지도. 다만 가난한 사람들은 음의 소득세를 낸다. 곧 정부로부터 현금을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계 세율이 어떤 소득 계층에서나 상당히 낮게 책정되므로 보수가 아주 낮은 일자리라도 갖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자연히 의욕 저상은 없다. 국민회의의 안처럼 최저 생계비와 소득 사이의 차액을 지원할 경우 수혜자의소득엔 세율 1백%의 세금이 매겨진다. 따라서 의욕 저상은 필연적이다. 음소득세의 경우 한계 세율만이 매겨지므로 수혜자는 한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이익이고 의욕 저상은 없다. 이 방안의 두드러진 장점은 어느 방안보다도 돈이 덜 든다는 점이다. 의욕저상 현상이 없는데다 갖가지 면세 조치들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음소득세는 좋은 점들을 여러가지 지니고 있다. 가난해서 정부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대부분 일자리를 갖게 되므로 수혜자들의 인격에 상처를 덜 입힌다. 따로 기구를 만들 필요가 없이 그저 국세청의 기구를 조금 늘리면 된다. 실업을 늘리지 않으며 노사 분규를 누그러뜨린다. 소득의 처분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으므로 각 가정은 각자의 필요에 맞게 소득을 처분할 수 있어 지원 효과가 극대화된다. 음소득세가 지닌 또하나의 매력은 그것이 현행 소득세 제도를 개선하리라는점이다. 현행 소득세 제도는 너무 낳은 면세 조치들을 두고 있다. 게다가 면세점을 꽤 높이 잡고 있다. 그래서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면세점의 소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는 상당한 차이를 무시한다. 음소득세는 원래 밀턴 프리드먼이 제창했다. 그동안 여러 나라들이 여러 형태로 도입해 효율적이고 실제적임이 증명되었다. 소득세 제도와 사회보장 제도를 하나의 깔끔한 체계로 묶은 음소득세는 단편적이고 허술한 사회보장 제도들만 있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